brunch

매거진 세간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목란 바라기 Nov 15. 2018

강사법 개정안과 9회 1사 1루에서 들어온 싱커볼

이 주 전 LH 박물관 대학에서 소주, 항주, 남경으로 답사를 와서 난생 처음으로 대중에게 역사 강연을 했다. 하지만 내 전공은 중국진한사, 사상사이기 때문에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강소, 절강 지역 역사에 대해서는 그리 훤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문헌학을 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무슨 유적같은 걸 설명하는데 쥐약이다. 비유컨대, 미국의 어느 박물관에서 중국사 공부만 했던 내가 일본사 강연을 한 셈이다. 초딩때 사서삼경 정도를 떼는 전통시대 공부법의 세례를 받았다면 비전공분야도 강연할 자신감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오늘날 교육의 토대가 되는 것은 서양의 학문이다. 따라서 중국사 공부를 하면 할수록, 종종 중요한 일차 사료를 외우는 중국 학자들을 만나면, 기초 실력이 딸리는 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비중국인의 경우, 중국사는 전공자조차도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밖에 공부할 수 없다. 즉, 중국 밖에서 중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가능한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각각 퍼즐 조각들을 만들고 조합해야 한다. 예컨대, 일본 같은 경우는 비록 근래 중국사 연구의 수준이 정체 혹은 퇴보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오지만, 전통 시대 역사 지리 지역 전문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LH 박물관 대학에서 초빙해야 할 강사도 그런 지역 전문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점차 학문 후속세대의 맥이 줄어드는 한국에서 이제는 그런 전문가를 수소문 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엊그제 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약간의 금전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강사법 개정안이 교육위 법안소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고려대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강의와 강사수를 축소화시킬 계획이었다는 대외비 문건도 폭로되었다. 기실 대학에서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은 강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측에서 계속 제기 되었다. 지금도 학문 후속 세대가 날이 갈수록 가늘어지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런 흐름을 봇물터지는 식으로 막을 수 없게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혹자는 대학에서 쓸모없는 지식들을 가르치는 먹물들은 싸그리 구조조정 당해야 한다면서 박수를 칠지 모르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초 학문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만은 보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강사법 개정안 덕분에 학문 후속 세대들이 박사 학위를 획득했지만, 비록 박봉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자신의 전공을 계속 연구할 자리조차 박탈될지도 모른다. 


고려대 문건의 폭로는 약간의 강사법 개정안 지지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쟁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둥, 대학이 그렇게까지 교육의 질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둥, 계속 지지를 호소하는 북만 둥둥둥 친다. 하지만 이미 합의한 법안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이를 이용하지 않는 바보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야구 웹툰 <클로저 이상용>에서 주인공 이상용이 진승남에게 “상대의 움직임을 내 형편에 맞추는 바보같은 짓 저지르기 쉽다”고 조언했는데, 강사법 지지자들이 딱 그 짝이다. (http://sports.donga.com/Cartoon?cid=0100000204&sid=334)어쩌면 팀배팅이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한다고 자신의 타격리듬대로만 당겨치는 타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설사 9회 1사 1루의 마지막 기회에서 상대 투수의 싱커를 빚맞춰서 더블플레이를 초래할지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성이 남아도는 시대의 유산: 징병제와 병역특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