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과연 천고의 요새인 함곡관인가?
아침에 요탸오를 먹으면 확실히 힘세고 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삼문협의 요탸오는 개봉의 것에 비해 짧지만 굵기는 여전하다. 강남에서는 이런 요탸오는 용허또우쟝(용화콩국물)永和豆浆 이란 대개 프랜차이즈 가게에서만 볼 수 있다. 겉표면이 매끈한 용허또우쟝의 요탸오와는 달리 북중국의 즉석 요탸오는 투박하다. 이게 정말 싸나이의 음식인 요탸오지 암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요탸오를 꿀꺽하고 근처 서외버스 터미널에서 링바오(영보)灵宝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함곡관函谷關이 비록 삼문협과 링바오사이에 있지만, 행정구역상 링바오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 택시를 타거나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8시 반 버스 터미널에서 링바오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링바오는 삼문협의 위성 도시이기 때문에 십 분에 버스가 한 대 씩 있다.
링바오로 가면서 신도심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근데 다 갈색이다. 하기사 모래폭풍을 직격으로 맞는 동네니까 다 그런 색으로 칠해놨는지도 모르겠다.
삼문협은 중국 3, 4선 도시에 해당한다. 1선은 북경, 상해 등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2선은 남경, 무한 등 각 성의 중심지 급의 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 신문을 보면 3,4선 도시에 부동산 공급 초과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지방정부도 적극적으로 부동산 재고를 줄이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의 아파트 공사 현장처럼 기본금없이도 입주 가능하며 심지어 달 마다 융자금 보조도 해준다는 플랭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이 동네 부동산 문제는 개발만 하면 무조건 땅 값이 오를거야라는 신화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다.. 삼문협에 상해 박람회장보다 더 규모가 큰 상가를 지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상해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메르세데스 벤츠 컨벤션 센터에도 공실이 있는데 말이다.
링바오 버스 터미널에 10시 쯤에 도착했다. 바이두百度와 시에청携程으로 검색해보니 이 근처에 삼문협으로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다 뻥이란다. 이를 어쩌나 하던 참에 터미널 앞에 주차한 어떤 운전기사가 백 위안 정도를 주면 함곡관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나이가 50줄 정도로 보이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였으며 자기 아들이 사 준 자가용으로 무허가 택시 영업을 뛴다고 하였다. 아저씨보고 아들이 효자네요라고 띄워주자, 자기 아들이 영하사범대寧夏師範大에 장학생으로 진학해서 지금 시안西安의 IT회사에 취직한, 유일하게 삼문협이란 동네를 잘 탈출한 젊은이라고 뿌듯해했다. 현(县)도 아니고 나름 개발되고 있는 시(市)에서 사는 현지인도 자기 자식이 여기에서 잘 나갔다고 흐뭇해하는 얼굴과 아까 지나친 상해 박람회장보다 큰 텅 빈 상가 건물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이곳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고 느껴졌다. 하긴 남경도 젊은이들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는데 말이다. 예컨대 남경대 기숙사 근처에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연 술집은 이 삼 개월만에 문을 닫았는데,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노인들 대상으로 하는 마작집 앞에는 손님들이 타고 온 전동차를로 가득하다. 함곡관에 도착하니 텅 빈 주차장을 가리키며 아저씨가 일본인들이 예전에 여기에 투자를 좀 했었는데 관광객 유치에 실패해서 유야무야되었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함곡관에 도착하면 금빛 노자상과 도덕경을 새긴 벽이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중원을 떠날 때 도덕경을 남겼다고 한다. 전서체로 새긴 도덕경은 나름 봐줄만 한데, 금빛 노자상이라니..... 불상도 아니고 말이다. 뒤에 건물과 비교해보면 금빛 노자상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관광자원 개발의 진정한 목적은 관광객들 유치가 아니라 주변 땅 값을 올리기라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소위 대륙의 기상시리즈라고 일컬어지는 각종 이상한 건물들이 곳곳에 지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중국인들의 미적 감각도 전반적으로 떨어지지만 말이다.
함곡관의 대부분의 유적은 청나라시대 때 중건된 도교 관련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아래처럼 원나라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석도 있다. 그 비석의 내용은 대략 노자老子가 함곡관에서 《도덕경道德經》을 남겼다는 역사적 사실이 《사기史記-노자열전老子列傳》의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하다라는 것이란다. 보통 중국의 문헌 고증학은 고힐강顧頡剛의 서경《書經》등 유가 경전의 사실성을 의심하는 고사변古史辯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송나라 때 들어서 이미 본격적으로 유가 경전에 기록된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의고疑故적 학풍은 주희朱熹가 《예기禮記》의 일부였던 《대학大學》와 《중용中庸》을 독립된 저술로 파악해서 흔히 말하는 사서삼경이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지금이야 주희와 성리학은 옛 것을 묵수하는 것의 대표로 인식되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학문적 실험이었다. 그리고 위의 비석이 그 학풍이 원나라 시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 사진은 계명대鸡鸣臺라고 하는 망루로 전국 사공자 가운데 한 명인 맹상군孟尝君이 진나라를 탈출할 때의 무대가 된 곳이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진소왕秦昭王이 재상으로 삼으려 했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그는 제나라 사람이니 설사 진나라 재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제나라를 위해서 일을 할 것이며, 결국 진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차라리 진소왕은 맹상군을 죽일 결심을 하였다. 이 사정을 파악한 맹상군은 진소왕의 애첩에게 도움을 청하자, 애첩은 맹상군에게 그의 백여우 모피를 얻을 수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모피는 천하에 둘도 없는 것으로 진나라에 들어왔을 때 이미 진소왕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이에 맹상군 식객 가운데 개도둑이 있었는데 한밤에 진의 궁궐로 침입하여 백여우 모피를 다시 훔쳐내어 애첩에게 건네주었다. 이에 애첩은 진소왕에게 맹상군을 풀어주기를 청해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진소왕은 곧 맹상군을 풀어준 것을 후회하게 되고 그를 추격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의 궁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맹상군은 이윽고 함곡관에 다다랐다. 그런데 함곡관은 밤에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맹상군은 동이 틀 때 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맹상군이 진의 추격군이 곧 쫓아오리라고 걱정하자, 식객 가운데 한 명이 닭울음 소리를 내서 주변의 닭들도 다같이 울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닭울음 소리를 들은 함곡관에서는 낡이 밝아오는 줄 착각하고 맹상군 일행을 통과시켰다. (<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요약)
계명대에서 십 분 정도 더 가면 함곡관 관문에 도착한다. 하지만 전국시대 함곡관 자리가 아닌 곳에 만든 모조품이다.
여기가 진한 시대 함곡관 자리이다. <킹덤>이란 만화에서 묘사된 함곡관하고는 완전히 뽐새가 다르다. 만화적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천 년 동안 지리적 조건이 변하지 않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뒤로도 계속 고갯길이 이어져서 십 분 정도 걸어갔으나 끝이 보이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바이두를 검색해보니 15킬로나 되는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함곡관 입장권 뒤에 그려져 있는 지도에는 조금만 가면 막다른 길이 있다고 표시되지 주의하자.
지형의 변화로 예전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관문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항일전쟁시기, 하남에서 섬서 지방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에게 이곳은 요충지로 간주되었고, 국민당 군과 일본군이 혈전을 벌였다.
함곡관을 둘러보는데 정말 오래 잡아야 2시간 정도 걸린다. 걷다가 힘들면 함곡관 관문 옆에 셔틀버스가 있으니 그거 타고 오면 입구로 돌아오면 된다. 오후 12시 반 정도에 관람을 끝내고 아까 빌린 무허가 택시를 타고 오후 한 시 반 쯤 삼문협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는 황하 상류의 유명한 명승지 가운데 하나인 호리병 입구 폭포[후커우폭포](壺口瀑布) 이다. 여기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산서山西 지방의 린펀(임분)臨汾으로 가야한다.
린펀(臨汾)은 한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수(汾水) 유역에 있는 도시이다. 황하 지류 가운데 하나인 분수는 예로부터 섬서의 서안과 산서의 태원을 연결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도 분수를 따라 서안-태원 고속철도가 놓여있다. 요새는 중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다 고속철도가 서기 때문에 편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물론 삼문협과 린펀에도 고속철도가 정차한다. 그런데 삼문협에서 린펀으로 고속철도를 타고 가려면 일단 서안까지 간 뒤 황하와 분수를 따라 북상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그래서 그냥 버스를 타고 고갯길을 넘기로 결정했다. 만약에 삼문협에서 린펀으로 가는 버스를 놓쳤다면 아래 지도에서도 보이는 윈청(운성)運城행 버스는 수시로 있으니 그것을 타고 산서지방으로 넘어가자. 참고로 린펀 우측에 있는 산맥은 태행太行산맥 이라고 불리며, 산서山西와 하북河北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린펀행 버스는 삼문협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탈 수 있으며, 하루에 한 대 오후 2시에 출발한다. 본인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늦어도 오후 한 시에는 터미널에 도착하자. 좌우지간, 오전에 함곡관을 둘러보고 오후에 린펀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린펀까지는 네 시간 쯤 걸린다. 섬서 지방 시외버스는 개인이 운영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 명함을 준다. 린펀에서 삼문협으로 돌아갈 경우 시외버스 터미널로 갈 필요 없이 버스가 지나는 길목에서 태워줄테니 시간에 맞춰 연락하라고 한다. 린펀 시내가 아니라 근교나 외곽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린펀에 도착하자 확실히 산서지방이 하남지방보다 잘 산다는 것을 느꼈다. 도시 규모도 꽤 크고 나름 단정하게 개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 사진처럼 도시 중심에 건설된 주상복합 아파트에도 공실이 많이 있다. 일 층 상가 구역에는 오랫동안 점포가 들어서지 않았으며, 윗 층 주거 구역에는 에어콘이 설치되지 않은 곳들이 상당히 많았다.
린펀에 도착하자 슬슬 중국 여행 현자 타임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천편일률적인 건물과 거리, 그리고 관광지는 왜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위해 두리번거려야 하는지 회의를 느끼게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쏘다닌 경험이 누적되니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주제가 슬슬 잡히는 것 같다. 음식과 자연. 근대화의 물결이 아무리 우리의 생활을 어디가나 비슷하게 만들었을지라도 저 두 가지만큼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