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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Sep 26. 2018

폭력, 전통 시대 사회 활동의 자격

여성이 전통시대에 사회 진출을 하지 못 했던 까닭에 대한 단상


한고조 유방의 마누라로 훗날의 역사가들에게 황제와 같은 대접을 받은 여후나, 정말로 황제가 된 당나라의 측천무후를 보면 고대 중국에서 여성이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한서漢書》의 저자 반고의 여동생인 반소 역시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었다. 따라서 아마도 당나라때까지는 여성의 사회활동은 금기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중국 진한시대로 눈을 돌려보자. 예나 지금이나 사회 활동의 꽃은 관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나라때 관료들의 직함을 보면 거진 다 무관이다. 후한 말 조조의 모사였던 저 유명한 순욱도 처음에는 하급장교인 사마司馬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진한시대 사회는 등작제等爵制로 운영되었다. 높은 작위를 받은 이는 세금 면제, 사면권, 토지 사여권등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작위를 수여받기 위해서는 전쟁에 나가 공로를 세워야 했다. 진한 왕조는 하루에도 백 번 이상이나 전투가 벌어졌다는 전국시대의 토대 위에서 건설되었다. 즉, 공공영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필요했다. 반면에 여성은 전쟁에서 병사로 징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들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 요건 자체를 갖추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병사를 통솔하는 능력이 관리의 기본 소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종 직접 나서서 사회의 음지에 있는 악당들에게 꿀밤을 선사해야 하는 임무를 맡기도 해야 했다. 요컨대 당시는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물리적 폭력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 있는지로 결정되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회 활동의 자격이 폭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하나, 당시는 본격적으로 관료제가 발달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여성도 문서 작성이나 정책 수립 등의 분야에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자원을 상당히 소모하는 사업이다. 매일같이 전쟁이 터져 항상 총력전 상태인 국가에서 무쓸모한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일은 상당한 낭비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싸움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이 보이는 분야인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도 여성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라는 이론을 신주단지로 삼아 남성들이 그동안 일부러 여성들을 지배하기 위해 교육이나 사회 활동에서 일부러 배제했다고 주장한다. 조선 후기의 교조적 유학자들의 생각이나, 작금의 대부분 개신교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 이론의 근거로 제시되기 충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반소의 사례를 보더라도 적어도 당나라 이전까지 남성들은 배운 여성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교육받지 못한 까닭은 그녀들이 전쟁의 소모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전통시대 여성들이 사회 진출은 커녕, 교육도 받지 못하고, 애낳는 기계로 살아야하는 운명을 맞이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맞다. 하지만 동시에 남성들 역시 대부분이 여드름이 채 가시지도 않을 나이에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신체 일부분을 못쓰는 신세로 살아야 했다. 왜냐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을 더 잘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 기구한 팔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든 남성들이 소위 가부장제의 수혜자이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차라리 하층 계급의 남녀 모두가 폭력의 시대를 지탱하는 제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이 더이상 사회 활동의 필요 조건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쩌면 페미니즘의 발흥은 폭력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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