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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Oct 23. 2018

개인의 주관이 사료를 오독시키는 사례

《사기史記-진섭세가陳涉世家》의 "死國可乎?“에 관하여 


진승과 오광이 대택향에서 진나라 이세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모의했다. 


”今亡亦死,舉大計亦死,等死,死國可乎?“ (《사기史記-진섭세가陳涉世家》)


이 구절을 《24사전역》은 "도망가도 죽고, 봉기를 일으켜도 죽으니,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므로 차라리 나라를 위해 죽자"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死国를 "나라를 위해 죽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왜냐하면 분명 고대 중국어에는 "為“라는 "~을 위해"라는 개사介詞가 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죽다"는 "為国死”라고 써야 맞다. 따라서 ”死國“라는 저 말은 "나라를 죽이다"라고 번역해야 맞다.


진승과 오광은 오늘날 하남성 출신으로 진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진시황이 중국 통일하자 마자 돌변해서 제국의 안위를 과연 걱정한단 말인가? 물론 많은 학자, 특히 50-60년대 맑스주의 사관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학자들은 중국 황제 체제와 사상사를 연구하면서 전국 시대의 계속된 전쟁이 당시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며, 동시에 황제 지배 이데올로기가 백성 개개인에게 삼투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섭과 옛 초나라 지방 사람들이 일으킨 통일 진나라에 대한 반란부터 시작해서, 한경제 초기 일어난 오초칠국의 난까지는 황제가 절대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한무제의 철권통치가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도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재정을 거진 다 소모하자, 당시 소금과 철 상인들에게 관직을 팔기까지 한다. 


요컨대, 위의 번역은 중국 지식인의 애국심이 기본 사료도 오독시키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고대사에 황제 지배 체제 이론이 깊숙히 박혀 있음을 넌지시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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