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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an 16. 2019

망각된 모병제의 역사적 의의, 신분제의 탄생.

한국 사회가 군인을 짬통 취급하는 걸 20-30대 남성들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며, 그 분노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로 전화된다는 포스팅을 봤다. 이에 대해 정부가 징병제를 폐기하고 모병제를 도입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댓글과 저격 비스무리한 글을 봤다. 그런데 군사제도사를 되짚어보면, 사실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훨씬 일반적인 제도였다. 왜냐하면 징병제처럼 아무 물질적인 보상없이 군대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엊그제 간만에 통독한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에 따르면 징병제는 근대에 이르러서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작동된다고 하였다. 즉, 상대를 먼저 적으로 규정하고 죽이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는 시대의 부산물이 바로 징병제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가 지속되면서 징병제가 유지될 정신적인 동기가 사라졌다. 남성들은 이제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예보다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징병제는 징벌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는 징병제 자체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여성들이 스플래쉬 대미지를 입게 되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여성이 아니라 국가에게 따져야 정상이지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일은 인간세 부지기수 아니겠는가. 그런데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약간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독박 병역을 이행하기 싫다는 징징댐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혜화역 몰카 시위보다도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이 역시 한국사회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 한국 남자들을 얼마나 개차반으로 보는지 잘 드러내는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처럼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언급한 페미니스트들과 징벌적인 징병제에 분노하는 한국 남자들이 드물게 합의할 수 있는 의제도 있다. 바로 모병제이다. 그런데 모병제를 통해 중국, 러시아, 일본의 군사 위협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군대 규모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대우를 약속해야 할까. 인력의 가치를 경시할 뿐만이 아니라, 평화에 익숙해진 한국에서, 병사 한 명 당 급여를 어느 정도까지 책정할 수 있을까? 전국시대 중국의 각 나라는 군공을 세우면 사회 신분을 표시하는 작위를 줬다. 전한시대 관료 조조晁錯에 의하면, 작위는 물질적 보상과는 달리 거의 공짜로 무한정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산력이 발달한 현대라고 하더라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양 중세의 기사 계급과 같은 전사 집단 형성이 더 이상 옛날 옛적 전설이 아닐 수도 있다. 사회적 차별을 타파하자는 진보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는 한 번도 예외없이 새로운 계급을 낳았던,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가부장제의 기원으로 봐도 무방할 모병제 시행을 지지하는 뽐새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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