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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un 01. 2019

약좌의 게임, 비판에서 자유로울 권력을 위하여

역사 공부의 효용에 대해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감계주의이다. 즉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사건을 거울로 삼아 오늘을 대비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쟁 관련 역사책을 들춰보면 패배한 쪽의 남성은 몰살당하고, 여성은 유린당한다는 내용이 곧잘 나오며, 이는 국력을 키워 타국이 넘볼 수 없게 해야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가장 최근에 한국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 인민들이 수난을 당한 사건으로는 위안부나 강제징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한국의 국력이 지금보다 훨씬 쇠잔해져 일본이나 다른 나라가 다시 침략한다면, 우리들도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엊그제 페북에서 어느 여대 교수가 한 이런 말에, 학생들이 위안부 모독, 강제징용 비하, 여성차별적 발언을 했다면서 고발했다는 글을 읽었다. 그 글쓴이는 교수의 처사가 부적절했으며, 이는 마치 어느 아버지가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거지가 된다는 식의 잘못된 발언을 한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들이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왜 국력이 약하면 강제징용을 당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하면 거지가 된다는 발언이 왜 그들을 비하하는 것이 될까? 그 글쓴이의 형도 나처럼 이해가 잘 안 되었나 보다. 


이에 그 글쓴이는 태극기 부대가 김정은에게 속지 말라고 하는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태극기 부대의 사고방식이 싫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글쓴이의 형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형이 그 글쓴이의 말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글쓴이는 교수의 위안부 관련 발언과 아버지의 거지 관련 발언 그 자체는 옳다고 하더라도, 태극기 부대의 김정은 관련 발언처럼 옳지 못한 까닭은, 교수와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싫어서 라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즉, 교수와 아버지의 발언이 옳지 않은 까닭은 발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와 아버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하트마 간디와 시진핑이 똑같이 세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해도, 심지어 동성애자의 권익을 강렬하게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간디의 말은 옳고 시진핑의 말은 틀렸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글쓴이가 형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 무리는 아니다. 만약에 글쓴이가 교수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언급이 그 범죄에 대한 책임소재를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형이 보다 쉽게 수긍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비유를 하더라도, 거지가 아니라 성폭행의 책임 소재를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복장에 돌리는 것과 비교했다면 더 적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교수의 말이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면 국민은 유린당한다. 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국가의 주인은 바로 시민들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항상 정신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 논리가 설사 어떤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릴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 교수가 직접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 스스로가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공격하지 않은 이상, 고발당한 건덕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글쓴이의 주장 역시 관심법의 오류를 범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덕분에 일전에 어떤 페북 네임드께서 남녀에게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남녀 차별을 지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히틀러식의 인종주의로 연결된다고 해서 키배를 벌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의 이런 주장들은 매사를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판단한다는 점에서 극우 수구 자한당류의 빨갱이론과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얼마 전 대림동에서 여경이 난동부린 조선족을 제대로 체포하지 못해서 사단이 난 적이 있었다. 이에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동일한 체력 검정 기준을 적용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이 역시 여성 혐오라고 맞받아 쳤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체력이 남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소위 인터넷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보다 훨씬 우월한 체력을 자랑하는 여성 헬스 유튜버가 여경 체력 검정 기준을 가뿐하게 통과하는 영상에 광분해서 악플들을 달고, 그녀의 영상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반면에 상당수의 남성들은 이 여성 유튜버에게 열광한다. 즉, 이제 주로 여성에게 약하다는 굴레를 씌우는 부류는 남성이 아니라 극성 페미니스트들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약좌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약자로 인정받기만 하면, 거의 모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약자를 입에 올리는 것, 표현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고나리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약좌의 게임은 게임과 만화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저 글쓴이의 포스팅에서 그 광풍이 역사 관련 설명과 해석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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