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절실한 세 자릿수 생명의 전화
더 이상 살아 있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살아 있고 싶지 않아요.
오늘 그냥 죽고 싶어요. 그냥 죽을래요.
- 로직의 노래 1-800-273-8255 가사 중에서
2018년 유명 팝가수 로직(Logic)의 1-800-273-8255라는 팝송이 그래미 시상식을 장식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번호는 미국의 자살 예방 핫라인, 즉 한국의 ‘생명의 전화’와 같은 번호이다.
실제로 이 노래는 로직이 우울증 및 자살 생각을 앓다가 이를 극복한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였고, 이 노래가 발표된 직후, 그리고 2017년 MTV 시상식, 201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로직이 공연을 한 직 후, 미국 내 생명의 전화 통화량이 만 건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통계 모델을 돌린 결과, 이 노래로 인해 자살로 인한 사망을 총 245명 가량 줄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1)
강렬한 자살 생각에 사로 잡힌 사람은 인지 기능이 평소처럼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2) 말 그대로 생사가 눈앞에 달린 상황에서 사람들이 외우기에 일곱 자리의 숫자가 벅찬 번호라는 의견이 많았다. 가령, 우리가 119 대신 특정 일곱 자리 번호를 쓴다고 상상해보자. 가족이 뇌출혈, 심장마비 등으로 쓰러진 경우와 같이 위급한 상황을 당했을 때,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수년 전부터 꾸준히 법안으로 발의된 것이 외우기 쉬운, 911(한국의 119)처럼 쉽게 누를 수 있는 번호인 988이다. 이 번호가 마침내 상원을 통과하여 2022년 7월부터, 전국적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988을 누를 경우, 정신 건강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전문팀으로 통화가 연결되며 필요할 경우 정신 건강 서비스와 연결해줄 뿐 아니라, 119 구조 팀과 마찬가지로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들이 출동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에서도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여전히 자살은 미국에서도 쉬운 대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 온 2015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더 많이 인지하고, 점점 음지에서 양지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988 번호의 상용화는 기념비적이다.
여러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위이며, 미국 자살률의 두배에 가깝다(2019년 기준 10만 명 당 26.9 명 대 13.9 명). 한국에서도 세 자릿수의 자살 상담 핫라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살고 싶어요. 이제 살고 싶어요.
오늘은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 로직의 노래 1-800-273-8255 마지막 가사 중
https://www.youtube.com/watch?v=U-0hFVgegA8 (Logic의 1-800-273-8255 한국어 가사 번역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Niederkrotenthaler et al. Association of Logic’s hip hop song “1-800-273-8255” with Lifeline calls and suicides in the United States: interrupted time series analysis. BMJ 2021; 375 doi: https://doi.org/10.1136/bmj-2021-067726.
(2) Schuck et al. Suicide Crisis Syndrome: A review of supporting evidence for a new suicide-specific diagnosis. Behav Sci Law. 2019 May;37(3):223-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