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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r 21. 2022

학교에서 배운 것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지승완을 보며

인생의 일 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해대는 법,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까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OST 중 김진표의 '학교에서 배운 것' 가사 중에서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 12화를 보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탈옥수 신창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학주에게 가차없이 손찌검을 당하는 지웅이를 위해 전교 1등 승완은 학교의 체벌 금지 조항을 어겼다며 경찰을 부른다.  


어찌 보면 나는 늘 문지웅보다는 지승완의 쪽에 서있던 학생이었는지 모른다. 선생님들은 나를 편애했고, 내가 잘못을 해도, 나는 모범생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맞는 대상이기보다는, 용서받는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어린 나이에 그 모든 것들이 불편했지만, 당장 내 몸뚱아리에 몽둥이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난다.

극 중 전교 1등인 지승완은, 학교 폭력에 항거하는 의미로 자퇴를 결정한다(출처: tvN)

20년이 지난 현재의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사실  모른다. 아마 학교에서의 폭력은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많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 여전할 거란 짐작을 한다.  1등부터 50등까지 성적표가  뒤에 붙었던 기억들, 공공연히 이루어졌던 부모의 직업에 따른 차별 대우들, 은근슬쩍 학생들 간의 경쟁심을 부추겼던 경험들.


학부 시절, 학교의 대학생활 문화원에서 진행했던 그룹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일종의 그룹 상담과 같은 형식이었는데, 한국 최고의 대학에 다닌다는 친구들 모두 하나같이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에 놀랐던 기억. 1등이어도 늘 누군가에게 비교당해야만 했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유독 한국 환자들에게서 열등감과 비교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추측한다.


극 중 지승완은 휘어지기 보다는 부러지는 것을 택한다. 20년 전에 나는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움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딸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내 아이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자랑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https://youtu.be/M7FfHQZVh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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