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r 30. 2022

내가 너라면, 나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거야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고유림 이야기

내가 너였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야(I would have done the same if I were you).


미국 와서 친구들로부터 꽤나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한국에서도 내가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14회를 보며 문득 다시, 저 문구가 생각이 났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펜싱계의 김연아'와 같은 고유림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다. 고등학생 시절 이미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IMF 이전까지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으며, 부라보 콘 광고까지 찍는 스타 중의 스타.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슬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아이다. 부모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유림이는 금메달 연금을 탐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은 늘 큰 빚에 시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보증까지 잘못 서서 빚이 늘어나고, 급기야는 아버지가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어,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버지는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고유림은 가족을 위해 러시아 귀화를 결심한다.

고유림은 가족을 위해 귀화를 결심한다(출처: tvN)

그리고 다음날, 순식간에 고유림은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된다. 단골 짜장면 집에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한테만 장사한다'며 짜장면 주는 것을 거부하고,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욕을 한다. 터널에는 누군가 '고유림 매국노'라는 낙서를 빨간 글씨로 섬뜩하게 새겨놓는다. 과장된 설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만약 김연아와 같은 국민 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귀화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렇게 수군거리는 사람들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고유림에 대한 인신공격은 과장된 현실일까, 아니면 우리의 현실일까(출처: tvN)

공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자세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훈련받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세를 진료실 밖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비단 고유림 만의 이야기일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 악플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사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댓글 창이니 말이다.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 중에서 고유림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감의 전제 조건  하나는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고, 알고자 하는 의지'이다. 어쩌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사람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지 않은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학교에서 배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