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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y 06. 2017

오르막길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실 결혼식 때 불러주고 싶었던 노래는 윤종신의 '오르막길'이었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윤종신의 가사 중에서도, 아내와 나의 상황에 너무 적합한 가사라고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실제로 오르막길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딸의 결혼식을 앞둔 장인어른, 장모님 면전에서 부를 수 없어서 포기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라는 부분에서 목이 메일 것만 같아서. 그 가사 그대로, 아내는  굳이 고된 나를 택했으니까. 아내는 한국 유수의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모두 수련받을 수 있는 보장된 기회를 버리고, 나와 함께 연고 하나 없는 미국 땅을 건너왔다.


지난 3 년간 우리의 결혼 생활은 예상대로 수많은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하나를 넘어서면, 또 다른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고, 가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연애할 때에 비해 다툴 일도 많았었다. 그렇게 한국, 미국을 통틀어 정신없이 총 여섯 군데의 집에서 살았고, 수많은 시험과 면접을 거쳐야만 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반 전엔,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 리아가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봉직의이기도 했다가, 학생이기도 했고, 미국에서 레지던트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국, 미 동부를 거쳐 지금은 미네소타의 한 시골 마을에 있다. 4년간 머무를 것만 같았던 이곳도 이제 조만간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간다. 나야 이 모든 과정을 의과대학 시절부터 계획했었다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내년 1년 차들 면접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의 배경 이야기를 처음 들은 한 3년 차 레지던트는 나에게 말했었다.


너 참 용감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아내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내 아내는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기에. 용기는 믿음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나에 대한 믿음 하나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 레지던트가 될 결심을 했다. 지난 3년간, 우리 부부가 이 과정에 쏟은 땀과 눈물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7월부터는 우리 모두 뉴욕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게 되었다. 뜻 한대로 모든 일이 이뤄지진 않았고, 많이 돌아 돌아왔지만, 오르막길의 가사처럼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준 아내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청혼을 할 때, 아내에게 '최고의 남자 친구 인적은 없었지만, 최고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난 최고의 아내와 결혼한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임을 매일 느낀다.


이제 우리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우리가 미래를 꿈꿨던 첫 여행지에서 함께  시작하게 된 데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수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세 가족, 아프지 않고, 함께 부대끼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해요, 저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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