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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n 13. 2017

좋은 부모라는 것

소아병동에서

메이요 클리닉 정신과에서의 마지막 근무지는 소아 병동이었다. 겨우 일 년 남짓 있었지만, 정이 많이 들은 공간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항상 처음과 마지막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본과 4학년 당시 분당에서 마지막 실습을 마칠 때도 그랬다. 나는 참으로 본과를 허투루 다닌 늦깎이 학생이었고, 본과 시절 좋은 기억보단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만은 기억에 남는다.


첫 소아 근무 때는 첫 주 금요일에 우리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래서 일주일 남짓 근무를 마치고 출산 휴가를 갔던 기억뿐이다. 불과 일주일 근무했을 뿐이지만, 딸이 태어나기 전에 소아를 보던 관점과 아버지가 된 후에 소아 환자들을 보는 내 모습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환자 (소아) 중심으로 보던 그림이, 이제는 부모의 관점으로 보였달까.  그래서 아빠가 된 이후에 소아 병동은 그 이전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로) 소아 정신과 의사는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소아 병동은 '부모 자녀 병동'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부모-자녀 관계에서 문제가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소아 병동에서 근무하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신출내기 정신과 의사의 눈이 아닌, 이제 부모가 된 지 겨우 5개월밖에 안된 초보 아빠로서 그저 이것저것 느낀 점들을 끄적여보고자 한다. 이 글은 부모 됨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려는 목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


소아 환자들은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ADHD) 진단을 받았다거나,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랐다든가, 부모의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다든가 하는, 소위 말하는 소아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이미지와 일견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특성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대다수의 환자를 아우르는 확실한 하나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방임 또는 학대받았던 기억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폭언을 듣고 자란 아이들, 엄마가 청소년인 딸에게 침을 뱉고 모욕을 준 케이스, 아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소녀, 아빠에게 발로 걷어 차이며 자란 아이들 앞에서, 나는 대신 사죄하고 싶은 심정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던 아이들을 세치 혀로, 손바닥으로, 발로, 성적으로 난도질한 부모들을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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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정말 선한 의도로 자녀를 양육했지만 결국 소아 병동으로 오게 된 부모들을 만나기도 했다. 자살 생각으로 병원에 입원한 한 고등학생 소녀의 부모는 매일매일 두 시간 남짓을 기다리며, 회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부모를 비롯하여, 수많은 환자들의 부모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공통분모는, 부부간의 양육 방식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였다. 권위적인 아빠와 허용적인 엄마가 있는 경우, 혹은 반대의 경우를 무수히 많이 보아왔다. 이 부모 또한 그랬다. 엄마는 나름 스스로 정한 규율을 아이에게 적용하려고 하고 있었고, 아빠는 딸이 원하는 바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위해 애쓰는 경우였다. 딸은 그 간극을 교묘히 이용하면서도, 부모의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는 양육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방황했다.


입원 말미 회진 중에 이 아빠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신 질환을 앓던 아버지로 인해 그의 가정은 매우 힘든 시간을 겪었고, 자신은 십 대 때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부모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식이 생기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고.


우리 프로그램 디렉터이기도 한 당시 회진을 돌던 소아 정신과 교수는 그 아버지에게 말했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지 마세요. 친구는 여럿이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뿐이에요. 친구들에게 친구의 역할이 있다면, 아빠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 있어요. 아빠(부모)가 그 경계를 명확히 해주지 못하고 집에서 규율을 세우지 못하면 아직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만한 역량이 없는 아이는 방황하게 돼요.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친구 같은 아빠보단, 아빠 같은 친구'가 될 거라고 아내에게 말하곤 했었다. 소아 병동 근무를 끝낸 지금,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친구 같은 아빠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양육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부부가 대화를 하고,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둘의 의견을 조율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내가 맡은 환자 중, 대략 90프로는 자살 생각 혹은 시도로 인해 입원한 환자들이었다. 그중에서 절반 가량은,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한 후에 소아 정신과 병동으로 입원을 한 경우였다. 목숨을 잃을 만큼 치명적인 시도들이 그만큼 많았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벼랑 끝에 내몰았을까. 한 소녀는, 아버지에게 어릴 때 학대당하고, 엄마는 약물 중독으로 인해 병원과 교도소를 전전한 나머지, 철저하게 방치된 삶을 살아왔다. 이 소녀는 술과 마약성 진통제를 과량 복용한 후, 스스로의 몸을 칼로 수도 없이 난도질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할 만큼 심각한 정도의 출혈이 있었다. 상처 또한 평생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정도로 깊었다. 놀랍게도 이 소녀는 내가 맡은 환자 중 가장 순한 아이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이 소녀는, 늘 치료에 열심이었고, 많이 호전된 상태로 퇴원하였다.


다행히도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입원을 한 아이들은 십중팔구 살아있는 것에 감사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다시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자살 연구의 종착지는 자살 예방일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의 정신과 의사들에게 이는 외면할 수 없는, 무거운 현실이다.   


*


지난 2년간 경험한 미국의 의료제도는 '비인간적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의료제도의 혜택을 나는 의사로서 어느 정도는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환자에게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는 때로는 매우 잔인하다. 한 달 전, 샌디에이고에 학회 때문에 가게 되었을 때, 딸아이가 잠시 아팠던 적이 있었다.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찰나에 내 머릿속에는 '그런데 지금 미네소타가 아닌 캘리포니아 주에서 응급실에 가게 되면, 보험이 커버가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 아내, 내 자식이 아플 때, 돈 걱정, 의료보험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소아 병동 근무 중에도 미국 의료제도의 처참한 현실을 자주 마주했다. 한 소녀는, 약물 과복용을 통해 자살을 시도한 결과,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호전이 된 후에야 소아병동으로 전원이 되었다. 이 환자가 중환자실에 처음 실려온지 4일이 지났을 때, 의료 보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앞으로 이틀, 즉 입원 후 6일까지 밖에 의료보험 처리가 되지 않을 예정이라고. 결국, 6일 만에 퇴원을 하지 않을 경우, 부모는 하루에 2000불에 가까운 비용을 온전히 지불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의료진은 분개했다. 결국, 당시 소아 정신과 교수의 소견서를 바탕으로 보험회사에서 이틀을 연장시켜주었지만, 미국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예였다. 천문학적인 자본을 보유한 보험회사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긴, 정신적 재활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하룻밤, 이틀 밤 보험을 처리해주네 마네하는 과정은, 불편함을 넘어선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가장 마음이 아픈 경우들은, 자녀의 인격적 성숙이, 부모의 그것보다 나은 경우였다. 엄마와의 관계 악화로 인해, 우울증과 자살생각이 악화되어 입원한 한 중학생 소년이 그랬다. 엄마가 환자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환자는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위권을 달리던 성적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환자의 경우 늘 아침 회진에 아빠가 늘 참석했었다. 젊은 시절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경험이 있었던 아빠는, 누구보다 환자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빠는 때로는 자신과 비슷하게 방황하는 아들에게 공감해주며, 또 때로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아들에게 조언을 해주며, 그렇게 아들 곁을 늘 지켜주었다. 아들이 있다면, 저런 부자 관계가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스스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늘 궁금했던 건 엄마였다. 똑똑하고, 선한 중학생 아이를 자살 생각에 이르게까지 만든 엄마는 과연 누구일까. 환자가 입원한 지 일주일쯤이 지나서야, 엄마는 회진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그날의 회진은 내가 본 어떤 회진보다 치유적이었다. 이 소년은 자신이 병원에서 배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바탕으로, 본인과 엄마가 어떤 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고, 어떤 과정으로 서로 감정이 상하는지를 매우 정확하게 짚어냈다.


"엄마, 내가 병원에서 배웠는데,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이 지점 (종이를 엄마에게 보여주며)에서 서로 표현이 서툰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아마 이 부분에서 서로 노력하면 우리 관계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 순간, 방의 수많은 어른들 (회진에는 소아 정신과 교수, 두 명의 레지던트, 간호사, 약사, 사회 복지사 등의 팀원들이 참여한다) 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은 바로 그 아이였다. 정말 똑똑한 아이구나.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왔던 기억.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엄마는, 이 상황을 마치, 의료진 앞에서 스스로가 망신을 당했다고 여겼는지, 소리를 지르며 병동을 뛰쳐나갔다는 간호사들의 보고를 회진 후 듣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아이가 퇴원할 때까지, 다시는 회진에 참여하지 않았다. 환자는 이와 별개로 우울함을 조금씩 극복하고, 병동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었다.


환자의 퇴원을 앞두고 우리 팀을 담당하던 교수님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는 정말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입원했을 때에 비해서 네 기분이 많이 좋아지고, 스스로 자존감도 많이 회복이 된 것 같아 다행이야. 퇴원을 하게 되면, 아마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다시 힘들어질 수도 있을 거야. 세상엔 네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과,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할 때도 있어. 우리가 아는 한, 넌 엄마와의 관계를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 하지만 엄마가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지 마. 그리고 네가 고칠 수 없는 그 관계 때문에 자살 생각까지 하게 되질 않길 바래."


*


마음이 훈훈해지는 환자들도 있었다.  만성 질환을 진단받은 후, 끊임없는 우울의 나락에 침잠하던 한 소년은, 자살생각으로 입원을 했다. 불과 2달 전까지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본적 조차 없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입원 첫날부터 자기는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들 (coping skill)이 없다고 말했다. 이 소년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치료에 임했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이 소년의 아버지는 30대 초반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었다.


퇴원하는 날 아침 소년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말했다. 이번 병동에서의 경험은 가족 전체에게 매우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그리곤 덧붙였다.


내 아이를 보면서, 내가 10대 때 이 병동에 입원했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했어요. 만약 내가 10대 때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들 (coping skill)을 배우고 기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20대, 30대 때 알코올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신과 병동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그날 아침 회진은 매우 훈훈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


결국 많은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대다수의 자녀들 또한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들어섰을 때, 선의는 왜곡되었고, 감정이 상하게 되었다.


*


지난 다섯 달을 생각하면, 미안한 점만 가득하다. 아내에게, 딸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였을까.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  토이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가사 중


나는 사실 이 가사를 몹시나 싫어했다. 왜 아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아빠가 아닌, 엄마가 스스로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지. 그의 유머 속에서 느껴지는 유희열의 마초성이 잘 드러나는 가사라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5개월 간 모든 걸 희생해야 했던 것은 아내였음을 나는 부끄럽게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미명 하에 나는 조금 더 잠을 청하고, 덜 책임감을 느끼고, 조금 더 편하게 육아를 한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였음을.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아마 그 대답은, 내 딸이 다 큰 후에도 나는,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저, 같이 정신과를 돌던 한 동기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난 부모는 아니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너무 좋은 부모가 되려고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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