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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Aug 08. 2020

남자가 우울할 때

남성 우울증에 대하여

우울증은 당신이 약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당신이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강하려고만 애써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의 기대 수명은 여자에 비해 짧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심장 질환, 사고사, 산업 재해, 흡연, 알코올 등등. 그리고, 자살 또한 이에 기여하는 큰 요인 중 하나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기대수명이 하락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이른바 ‘절망적 죽음 (deaths of despair; 알코올 관련, 약물 오남용, 자살로 인한 죽음을 통칭하는 개념)’이 남성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꼽고 있다(1).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자살률이 세배 이상 높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자에게서 자살률이 높은 것은 시대, 문화를 불문하고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자살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울증의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높게 나타난다(2). 얼핏 상반되는 이 두 수치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을 하는데, 첫째는, 여성에 비해 남성이 자살을 시도할 때에, 더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고(자살 시도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두 배 많다), 둘째는, 남성의 우울증은 여성에 비해 진단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우울증은 왜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우울증은 여성들에게서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3.5배에 달한다.

흔히, 우울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감정은 '슬픔'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우울증 외에도, 쉽게 화를 내고, 공격성을 띄는 형태로 우울증이 발현되는 경향성이 있다(3).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들은 물론이고, 의사들로부터도 진단이 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더 많다. 또한, 남성들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타인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에 대해서도 더 인색한 경향성을 보인다. 이는, 사회가 부여하는 남성성에 대한 기준과, 남성이 우울증을 겪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강한 낙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 (특히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제한받는다. 우리 사회가 설정한 강한 남성상은, 슬퍼도 울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로 인해, 우울증을 경험할 때에도 슬픈 감정이 분출되지 못하고 억눌린 나머지 (혹은 억누르는 것이 일상화되어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신체적인 증상(통증, 소화 불량)으로 표현이 되거나, 약물이나 술로 감정을 달래는 경우도 더 잦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또 다른 강한 남성상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즉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남자이다. 실제로, 남성성과 자살생각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남성들의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향성'이 자살 생각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4).


이제 남성들도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야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강한 남성의 상징인 운동선수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단어 "courage"(용기)의 어원은 라틴어로 심장을 뜻하는 cor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디 우리 세대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고, 힘에 겨울 때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남성이 진정 남자다운, 용기 있는 남성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참고 문헌

(1) Woolf SH et al. (2019): Life Expectancy and Mortality Rates in the United States, 1959-2017. JAMA; 322 (20): 1996-2016.

(2)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4): Preventing suicide: a global imperative. World Health Organization, Geneva.

(3)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Mental Health Information: Men and Depression.

(4) Pirkis J et al. (2017): Masculinity and suicidal thinking. Social Psychiatry and Psychiatric Epidemiology; 52: 31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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