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을 기리며
1970년대의 어느 날, 뉴욕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스티븐이라는 이름의 젊은 20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변호사 앞에 앉은 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몇 달 전,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어요. 저와 아내 모두 기다려오던 아이였죠.
이어서 그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아내는 출산 중에 색전증으로 사망했어요."
갑작스럽게 주 양육자가 된 스티븐은 어린 아들을 돌보기 위해 근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아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결심한 그에게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부담이 따라왔다. 스티븐의 아내는 교사였는데, 생전에 스티븐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아내가 사망하기 전 7년간 연금을 최대한으로 붓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 보장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지원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를 잃은 남성들에게는 본 사회 보장 제도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통보였다.
그의 건너편에 앉아있던 변호사와 미국 시민 자유 연맹 (ACLU)은 힘을 모아 스티븐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처지의 아내를 잃은 남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대법원은 결국 스티븐의 손을 들어줬다. 그 당시 대법관 중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도 그의 편을 들어줬는데 그가 찬성한 논거는 "엄마를 잃은 아이도 아빠를 잃은 아이와 똑같은 경제적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앞선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사는 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다. 2020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긴스버그가 하버드 로스쿨 학생이었을 당시, 전체 학생 550명 중 여성은 아홉 명에 불과했다. 그녀는 로스쿨 선배였던 남편이 졸업 후 뉴욕에 직장을 구하자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로 학교를 옮겼고, 1년 후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다. 미국 최고의 로스쿨 중 한 곳의 수석 졸업생임에도 그녀는 로펌 입사를 번번이 거절당했다. 여성 변호사 채용을 공개적으로 거부할 정도로 성차별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로펌 취직이 불발된 후 그녀는 학계로 방향으로 돌려 법학자, 인권 변호사, 법관을 거쳐 미국의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그녀는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앞선 스티븐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녀가 추구하는 평등은 남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됐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동시에 어떤 누구도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차별받지 않도록 맞서 싸웠다.
흔히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성에게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선 사례처럼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성을 차별하는 일이 남성에게, 남성을 차별하는 일이 여성에게 도미노처럼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국 명문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딸의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하며 응원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정신 역동 이론 중 '분열' (splitting; 쪼갠다는 뜻)이라는 방어기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대응하는 심리적 기전)는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만든다. 인지 심리학에서 이는 흑백 논리 또는 이분법적 논리라고 부른다. 이분법은 복잡한 상황을 쉽고 간단하게 정리하기에 매혹적이다. 그러나 정리 이외의 역할은 없다. 우리 아니면 남, 내 편 아니면 적,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 속에 중간 지대나 공생, 상생은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상대방의 권리를 찾는 것이 내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즉 분열의 사회는 양측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왜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는 걸까.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배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공감 능력은 30년 전에 비해 40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긴스버그 대법관은 법정에서 ’미국에 성 차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남성 판사들을 설득하고자 할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딸, 그리고 당신의 손녀딸이 살았으면 하는 사회를 생각해 보라.
흔히 공감 능력을 타고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 수련하며 공감 또한 학습과 의지 그리고 노력에 의해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처음 정신과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 나는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환자에게도 더 높은 수준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내가 이 능력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환자를 만나고 공감하기 위해 애쓴 노력의 결과다. 실제로 공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공감 능력이 학습 가능한 영역임을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혔다. 공감 전문가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윌리엄 밀러 박사는 그의 저서인 <잘 듣기: 공감적 이해의 기술(Listening well: The art of empathic understanding)>에서 공감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짚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둘째로,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감이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는 일, 즉 자신의 스위치를 잠시 꺼두는 일이다. 공감은 그렇게 타인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특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일수록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과정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의 기저에는 더 높은 수준의 '컴패션 (연민, 혹은 동정심이라 번역되지만, 사실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선, ‘고통의 동행’에 가까운 뜻)이 존재한다. 이는 타인을 향한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 이상의 가치이며, 타인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욕구와 헌신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수록 그 고통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싶을 것이다. 또 타인의 말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일수록 우리 각자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비슷하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긴스버그 대법관이 전하고자 한 가치는 결국 잃어버린 공감을 회복하고 나아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것 아니었을까.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 내 권리를 침해받는 것과 같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긴스버그 대법관은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겐 그 명제를 받아들이고 실천할 만한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녀의 삶에 응답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타인에게 공감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남긴 유산에 답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