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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라깡 세미나 XX, Encore 번역 1

1-0~1. 주이상스에 관하여

본 연재물은 저자가 프랑스어와 정신분석을 같이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에 되지도 않는 프랑스어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오역 가득한 번역본으로 해석에 적잖은 혼란을 줄 여지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참고문헌으로 삼기보다는 단순 참고자료로 봐주세요. 오역에 관한 지적은 항상 환영합니다.


<정신분석의 윤리 (세미나 VII)>을 출판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예의의 한 형태였습니다 -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부탁한 뒤에 말입니다. 이제는 이에 대해 조금 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내 여정을 구성하는 것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어떤 규칙(l'ordre)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시간이 지나도 내가 여전히 여기에 있고 당신도 거기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여전히 놀라운 일입니다... 여전히.     


한동안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여러분,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모두에게 있는 그것이 정말 똑같나요?


여러분에게 조각조각 전달되는 어떤 지식에 대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저와 관련 있는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나와 여러분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기보다, 나는 여러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고 가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관해서는 내가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라고 분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그곳에 도달할 때쯤에는 어떤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의 분석주체 중 한 명이라면, 여러분의 그것(역자 주 :분석 그 자체, 혹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여러분에게 충분해 보일 때만 일반적으로 분석을 끝낼 수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스스로 드러내는 그 무엇과 달리, 분석가로서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는 아무런 난관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

     

작년엔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혹은 나쁘게(ou pire)'(역자주:세미나19)라고 말입니다. 이는 사라집니다(Ca s'oupire). 이는 '나'나 '당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해치지도 않으며, 당신도 나를 해치지 않습니다(me ou te oupire). 우리의 길, 곧 분석 담론의 길은 이 좁은 한계, 이 칼날에 의해서만 진행되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사라질 수(s'ouprier)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oupire가 어떤 기표에 대한 유희인지 아시는 분은 댓글로라도 부탁드립니다. 슬라브, 튀르키예 민속에 나오는 악마도 Upiór로 비슷하게 발음되어, 여기서는 해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저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이 담화입니다. 올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저는 먼저 여러분이 2인용 풀사이즈 침대에 누워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내 말이 무엇인지 물어볼 만큼 친절했던 누군가, 즉 법학자에게 나는 다음을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즉, 내가 찾지 못한 말의 기초가 무엇인지(즉, 언어는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이 느끼게 하려고요) 나는 법학부에서 연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코드(codes)의 존재가 그 언어를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시대에 걸쳐 구성되어 있는 반면, 말하는 존재,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침대에 있다고 가정하고 시작하려면 사과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이 침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법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것, 즉 주이상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법학자에게 상기시킬 것입니다.


법은 침대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동침한다는 의미에서) 동거의 기반이 되는 이 좋은 관습법을 생각해 보세요. 이는 함께 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입장에서는 법에 의해 가려져 있는 것, 즉 우리가 이 침대에서 하는 일, 즉 포옹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한계, 즉 진지해지기 위해, 즉 그것에 접근하는 일련의 것을 확립하기 위해 실제로 시작해야 하는 한계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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