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 1
“나는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개미가 됐으면 좋겠어”
“왜?”
“개미는 땅을 잘 파잖아.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맨날 땅굴을 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아니야. 파다가 울고, 파다가 울고. 그렇게 햇수만 채웠거든.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제대로 파지도 못했어. 개미로 태어난다면 적어도 파는 거 하나는 잘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파는 건 두더지도 잘하잖아. 두더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니다. 두더지는 아니야. 두더지는 보통 혼자 다니잖아. 그건 외로울 거 같아. 땅을 파고 들어가면서도 동료들이랑 같이 있는 개미가 더 좋을 거 같아.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태어나면 처음으로 하는 게 우는 거잖아. 지금도 울고 있지만, 난 그게 너무 끔찍해. 울음으로 삶을 시작한다는 게. 내 인생의 미래가 정해진 채로 시작한 거 같아.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것도 내가 태어날 때 울었던 거의 수미상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데 수미상관을 잘 이루려면 울 때 죽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고. 그러니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태어나지 않으면 울지도 않을 거고, 울지도 않으면 울음을 예상할 일도 없을 거고, 울지 않으면 과거의 울음을 떠올리며 더 깊이 울 필요도 없을 테니까. ”
“개미로 태어났는데 네가 없으면 외로울 거 같아. 나는 개미로 태어나도 소심하겠지? 개미들은 페로몬을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잘 움직이던데, 나는 그런 것도 잘 못 할 거 같아. 어딘가 구석에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뒤늦게야 무리에 합류하곤 하겠지. 이렇게 보니까 인싸 무리에 섞이려고 하는 아싸 같네. 개미는 역시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나도 태어나지 말아야 할까? 그런데 나는 태어나고 싶은데. 태어날 곳이 없어. ”
“태어나지 않더라도 뭔가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돌이 될 수도 있고, 흙이 될 수도 있고, 물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나는 내가 죽으면 잘 태워서 잘 뭉친 다음에 단단하게 굳혀서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 뿌려줬으면 좋겠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 한다면 그때는 자유롭지 않을까.”
“네 얘기를 들으니까 나도 되고 싶은 게 생각났어. 나는 나무가 될래. 나무는 뿌리가 있어서 어디든지 파고들 수 있고 가지가 있으니 하늘을 향할 수도 있잖아. 가지에 잎새들이 피면 잎새들로 햇빛을 가리고 비도 막을 수 있고. 그리고 네 옆에 뿌리를 박으면 외롭지도 않을 거야.”
“그거 좋다. 이왕이면 네 뿌리가 나를 관통하면 좋겠다. 어디선가 돌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어딘가 흡수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하지만 네가 없어지면 나는 또 혼자가 되잖아.”
“아니야, 내가 네가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거 좋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하나가 되는 거야.”
“그런 내세라면 나쁘지 않겠다.”
“나도.”
조력사(助力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