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스토리 리뷰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사랑이 떠나고 ‘나’는 쓰기 시작합니다. 짧았던 밤들에게, 겨울 안개들에게, 촛불들에게, 흰 종이들에게, 눈물들에게, 그리고 열망들에게. 하지만 뭔가 빠진 게 있지 않나요? ‘나’는 사랑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장님처럼 사랑을 보지 않으려 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문을 잠구어 버릴 뿐입니다. 그렇게 사랑은 빈집에 갇힙니다. 사랑을 잃고 쓰지만 시인은 결코 사랑에 관해 쓰지는 않습니다. 그가 적어내는 건 떠나는 이의 발걸음. ‘너’의 사랑을 잃었던 화자는 이제 문을 잠금으로써 ‘나’의 사랑도 잃게 됩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종언이네요.
‘나’는 ‘사랑’을 버리고 떠났지만 언젠가 다른 ‘너’의 사랑을 받아 치유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 집에 갇힌 ‘사랑’은? 그 사랑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유폐된 사랑의 생애를 육화시킨 영화가 있다면 아마 <고스트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죽은 C를 떠나보낸 M은 시의 화자가, 남겨진 고스트 C는 빈집에 갇힌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빈집에 갇힌 사랑이라는 유령에게는 유일한 행동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M이 남기고 떠난 쪽지를 찾는 일. 고스트는 M이 떠나고, 집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져도, 다시 그 공간의 역사를 거쳐 M이 쪽지를 남기는 시점으로 돌아와 쪽지를 찾습니다. 극 중반에 철학자가 말했듯 우리가 아무리 무언가를 남긴다 할지라도 결국 무용한 일입니다. 이 우주의 원리 앞에서 모든 존재는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M이 남긴 쪽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쪽지는 집이 허물어질 때 찢겨졌을 것이고, 그 의미를 기억한다 할지라도 기억하는 자아조차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스트는 여전히 쪽지를 찾습니다. 이쯤되면 중요한 건 ‘쪽지’가 아니라 쪽지를 찾는 ‘행위’ 같기도 합니다. 이는 유명한 라캉의 언명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진실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허무하고 무의한 것으로 확증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의미란 결과가 아니라 ‘행동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 흔적을 기어코 확인하고자 하는 고스트의 행동은 일면 우리 인간 사랑의 형태소, 말하자면 사랑소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는 집의 문을 잠그고 떠났지만 ‘사랑’이라는 녀석은 그 영원 속에서 당신의 흔적을 매만지고 있네요. 여러분의 사랑에서는 어떤 사랑소가 반복되고 있으신가요.
이제 철학자의 말을 거꾸로 돌려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무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인간들은, 그 운명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속삭이고, 기다리고, 달려간다고. 역사의 필연 속에서 우연을 찾는 것 마냥 사라지고 스러질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그것이 인간이라고. 그러니까 종국에 고스트가 쪽지를 확인하며 물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베드엔딩이 아닌 것입니다. 고스트는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인간성을 사랑합니다.
이 허무의 우주 속에서 반복되는 물질소인 원자를 통해 사랑을 노래하는 칼 세이건의 문장을 끝으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과거 언젠가 별의 내부에서 합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별들의 먼지로 구성된 우리 몸은 별의 탄생, 별의 진화, 별의 죽음과 초신성 폭발의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빅뱅과 별과 물질의 순환을 통해 이루어진 전 우주의 장엄한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 만약 하늘의 별에 관해 알기 원한다면 저 하늘을 보기 전에 먼저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당신과 나는, 이 기나긴 우주 역사의 체현이므로.
때가 되면 곧 우리는 흩어지는 파도처럼 헤어지고 말겠지만 방출됐던 원자들이 다시 만나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듯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영원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발췌 및 고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