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으면 구체적으로 뭐가 좋을까?

인지심리학자 김태훈 교수를 만나다

by 최희선

어릴 적부터 도서관 공기를 좋아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쿰쿰한 책 향기와 적막한 분위기. 그 고요한 틈에 파묻혀 책을 읽던 경험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책을 사랑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공력을 알기에, 종이 무더기 속에 담긴 작가의 긴 시간과 노고를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나는 신간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많은 책을 접하지만, 가끔은 업무를 위해 빠르게 독파해야 하는 고충도 따른다. 만약 일로 만나는 책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책 읽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의 짐만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체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읽고 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이번 인터뷰는 이 물음에서 출발했다. 독서의 가치와 종이책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글이 작게나마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되었으면 한다. JTBC 간판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한 (재미있는) 심리학자이자 <깊은 생각의 비밀>의 저자 경남대학교 심리학과 김태훈 교수님을 만났다.


Q. 새해 목표를 물어보면 늘 상위권에 '독서'가 등장합니다. 책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는 왜 그렇게 책을 읽고 싶어 할까요?

김태훈(이하 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새해 목표 중 독서가 항상 상위권에 오르죠. 제가 최근에 본 조사에서는 독서가 5 위더라고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왜 독서를 하려는 걸까? 그리고 하필 새해 목표로 독서를 꼽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부동의 1등 이유는 '자기 계발'입니다. 똑똑해지고 싶고,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일종의 도덕적인 의무감이나 불안함 때문이죠. 사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독서는 특정계층(성직자나 관료 등)의 사회적 역할, 즉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세계관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일반 대중도 '내 운명을 내가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안 하면 불안해지는 거예요.


Q. 책을 안 읽으면 어떻게 되나요? 머리가 딱딱해지나요? 사실 요즘 시대는 꼭 책이 아니어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잖아요.

김: 어떻게 됩니다(하하). 인지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볼 때,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라서 머리 쓰는 걸 싫어해요. 하지만 책을 읽으려면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 그래서 힘든 작업이기도 하죠. 독서가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요.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건, 책에 있는 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 빈틈을 계속해서 채워나가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숟가락을 들었다"는 문장을 읽는다고 해볼게요. 그는 왜 아무 말이 없을까? 뭔가 불편한 상황인가? 이런 추론을 하게 되죠. 주어진 정보는 작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추론을 해 나갑니다. 이 추론하는 능력이 인간의 중요한 능력이고, 독서를 할 때 무조건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두 번째는 구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들어오는 정보를 원래 가지고 있던 지식 구조와 계속 연결하거든요. 파편화된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해서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죠. 그게 구조화된 생각을 하는데 도움을 많이 줍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책에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나오잖아요. 대화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 한번 생각하는 게 일종의 '대리 학습'입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는 힘이죠. 독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대화가 오가는 장면들을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해 줘요.


Q. 영상으로는 말씀해 주신 이점을 얻지 못할까요? 요즘은 정보를 잘 전달해 주는 영상도 많아서요.

김: 정보를 처리하는 깊이가 다릅니다. 영상은 주로 시각과 청각 자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볼 때 이러한 자극들이 뇌에서 자동적으로 빠르게 처리돼요. 고민할 필요도, 상상할 필요도 없죠. 그래서, 보고 나서 '좀 전에 뭐 봤지?' 하는 경험이 흔한 겁니다. 깊게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아요. 반면에 독서는 추상적인 기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계속 해석을 수반해야 하니 느릴 수밖에 없죠. 그리고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독서를 하는 동안 상상하면서 계속 빈칸을 채워야 되거든요. 잠깐 읽다가 '이런 의미인 건가?' 생각해 보고 다시 또 읽어보고... 독서를 하면 이렇게 머리를 쓸 일이 많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 오디오북 들으시는 분들 많잖아요. 오디오북을 활용하시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여유가 있다면 책을 직접 읽는 게 더 좋습니다. 오디오북은 정보 처리 단계를 하나 줄인 겁니다. 글로 읽을 때는 시각 자극이 청각 자극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디오북은 이러한 변환 과정이 생략됩니다. 눈앞의 글자를 하나하나 시각적으로 처리하는 거 같지만, 사실 우리는 눈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청각 자극으로도 처리하거든요. 예를 들어, '새해 목표'라고 글자가 쓰여있으면 우리는 그걸 시각적인 자극으로만 처리하지 않고, 여기 안에서 '새해 목표'라고 나도 모르게 읽습니다. 이처럼 시각 자극이 머릿속에서 청각 자극으로 변환되는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되는데, 자극이 많을수록 기억은 훨씬 오래 남습니다.


Q. 영상에 익숙해져 있다가 책을 읽으면 집중이 안 돼요. 몇 페이지밖에 안 읽었는데 졸리거나 딴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김: 독서는 읽다가 멈추는 게 흔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이니까요. '왜 집중하지 못했지?'라고 자책할 게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구나'라고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물론 너무 피곤하면 글이 안 들어오지만, 읽다가 딴생각이 드는 건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아지신 겁니다 (하하).


Q.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그런 경험이 자연스럽다고 하니 위안이 되네요. 또 독서하면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요?

김: 독서는 작업기억의 용량을 늘려줍니다. 책은 앞에 있는 내용을 기억하고 있어야 뒤의 내용이 이해되거든요. 앞뒤 맥락, 복선, 논리적 구조 등을 모두 작업 기억에 넣어 놓고 읽어야 책이 잘 읽힙니다. 이렇게 작업기억 용량을 늘려 놓으면 다른 일들도 잘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작업기억은 컴퓨터 메모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컴퓨터 메모리가 작으면 컴퓨터 속도가 느리고 잘 안 돌아가잖아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작업기억의 용량이 부족해지면 작업을 잘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됩니다. 책을 읽으면 먼저 후두엽의 시각 피질이 자극되고, 측두엽의 언어 영역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정보를 저장합니다. 그와 동시에 전두엽의 인지 통제 기능이 자극되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깊이 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죠.


Q. 그럼 책을 더 잘 읽는 방법도 있나요?

김: 책을 많이 읽는 분들 중에는 책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촉각으로 책의 질감을 느끼고, 후각으로 책 냄새를 맡는 것처럼요. 이 책의 질감은 뻣뻣하네? 어떤 내용일까? 생각해 보는 것처럼, 책을 느끼면서 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도 책을 더 잘 읽게 도와줍니다.


필사도 도움이 됩니다. 필사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측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물리적인 경험과 심리적인 경험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감각적인 경험을 많이 해야 됩니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작가님은 원고지에 글을 쓰실 때, 꾹꾹 누르는 밀고 나가는 힘을 느낀다고 하세요. 손의 감각을 통해서 지금 구상하고 있는 내용을 그처럼 쭉 밀고 나간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이처럼 필사를 한다는 건, 손의 감각을 정교하게 익힌다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사고가 확장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으셔도 돼요. 석 달째 읽고 있는 책, 2주 만에 다 읽은 책처럼요. 지금 다 소화하지 못하면 나중에 다시 돌아오셔도 됩니다. 재밌는 건 그렇게 돌아오면 '아, 이게 그런 말이었구나!' 할 때가 가끔씩 있어요. 처음이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의 얇은 책을 읽어보세요.




우리는 전례 없이 자극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자극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숨고르고 사유할 여유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하루 종일 책을 읽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다. 고작 300년 전, 책만 보는 바보들이 유유자적 종로 땅을 걸어 다녔던 것처럼, 오늘의 서울도 그렇게 책만 보는 바보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종이책이 위상을 잃어가는 시대에 종이책을 정말 사랑했던 어느 선비들의 애정이, 그 대가 끊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책들에 스며 있는 은은한 묵향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고,
보풀이 인 낡은 책장들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울적한 내 마음을 옛사람들의 노래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낯선 섬나라의 파도 소리로 마음을 들뜨게 하기도 한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