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정신의학신문 고문]
나이가 찼다고 결혼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을 일 또한 아니다. 내게 진정 아버지 될 능력이 있는지 물어보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갖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자신의 건강과 집안 형편, 그리고 자질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저 먹을 건 타고 난다는 말도 옛말이다. 이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몇이나 낳을 것인지, 딸 아들 구별 않고 키울 자신이 있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한국 부모는 이 점에서 너무 안이하다. 어머니는 그나마 생각도 하고 나름대로 신부교육도 받는다. 하지만 한국 남자들은 이 점에서 아주 낙제점이다. 어디에도 아버지에게 신랑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 그런 말조차 없다. 덜컹 장가만 가면 출산, 육아쯤은 절로 되는 줄 알고 있는 ‘건달들’이다.
난 그래서 총각들을 위해 결혼 강좌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아빠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난 이것이 세상의 어떤 교육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중요한 과제라고 믿는다.
문제는 지금의 젊은 아빠들은 산업시대 가정에서 자라 아버지를 못 보고 자란 세대라는 점이다. 아빠와 아이가 노는 것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상적인 아버지 상을 고민해본 적도 없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같이 있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퇴근 후나 주말에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빠와의 캠핑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기차를 타고 일박 캠핑을 떠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처럼의 아빠와의 나들이에 모두들 신이 났다. 한데 장작 아빠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래서야 무슨 교육이며, 훈육이랴.
자식의 교육권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권리요, 의무다. 학교도, 선생도, 국가도 아닌 아버지 고유의 권한이다.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아버지다. 비록 불완전하고 경험이 미숙하더라도 아이의 최초의 교사는 부모다.
어머니가 코치라면 아버지는 감독이다. 아이 가까이에서 가장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은 코치인 어머니다. 아버지는 크게 멀리 보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에 대해 아버지가 먼저 고민하고, 나름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막상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들을 많이 보아왔다. 더 이상 자녀교육을 아내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이고,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 또 고민하자.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란 아이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어느 나이에서나 인간은 예외일 수 없다. 아이와 함께 부모도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부모니까, 어른이니까 마치 완벽하다는 듯한 착각은 금물이다. 애들을 가르치고, 지시하고, 꾸짖는 위치에 있기에 마치 자신은 완벽하다는 착각을 하기 쉽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이 착각이 자신을 옹고집으로 만들고, 때로는 억지를 쓰게 하고 쓸데없는 권위만 내세워 고함을 지르게 한다.
그게 잘못된 줄 알면서도 아버지의 위신상 억지로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게 당신의 조급한 성격, 미숙한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자관계도 대인관계인 이상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모든 원칙이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령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일, 이건 인간관계의 상식이요, 기본이다. 이 원칙을 무시한 데서 문제가 빚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인간적 미숙이 아이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때론 반항의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좀더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배우는 과정에 있고 자라는 과정에 있다. 아버지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빠 그렇게 키워선 안 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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