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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Dec 26. 2017

ADHD의 역사

교사를 위한 ADHD 이야기 (1/10)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ADHD라는 병은 세상 그 어떤 병보다 많은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인 병이다. 그래서 병의 존재 자체에 관한 의문,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이론, 치료방법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라면 누구나 ADHD 학생이 실재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저 기다리는 것보다 제대로 치료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ADHD 진단은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유발해왔으며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ADHD에 관한 오해와 편견이 왜 발생하는지 알기위해서는 ADHD라는 질병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1798년에 크릭톤이라는 영국 의사가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는 타고나거나 질병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1800년대 중반 의무교육이 시작되면서 밖에서 뛰놀던 모든 아이들이 실내에 들어와 일정 시간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기 시작했다. 의무교육을 시작한 모든 나라에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학생들에 관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1902년 조지 스틸이라는 영국 의사는 이런 문제가 남자 아이들에게 많으며 가족력이 많다고 하면서 도덕성(moral)의 부족이라 해석했다. 도덕심을 체벌을 통해 가르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1917년부터 1919년 사이에 세계적인 뇌염 인플루엔자 유행이 있었고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후유증이 심각했는데 특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이 두드러지면서 사람들이 행동문제가 도덕성이 아닌 뇌로부터 기인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1947년에는 오늘날 ADHD, 학습장애, 품행장애로 세분화해서 진단되는 아이들을 통틀어 미세뇌기능부전(minimal brain dysfunct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뇌의 작은 손상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과잉행동/충동조절장애(hyperkinetic impulse disorder)라는 더 세분화한 명칭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ADHD가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질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최초의 ADHD 치료제인 리탈린(Ritalin)은 1961년이 되어서야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1968년에는 다시 산만한 문제의 원인을 부모와 주변 환경에서 찾는 세력이 다시 득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진단명이 과잉행동반응(Hyperkinetic Reaction of Childhood)으로 바뀐다. 산만한 행동을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으로 본 것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면 증상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1970년 워싱턴 포스트 지는 네브라스카 주 아동 중 5-10%가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연방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기사를 내놓았고 이후 엄격한 처방규제로 인하여 처방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사진_픽셀


1975년 점차 줄어가던 ADHD 환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한다. 장애교육법이 통과되면서 ADHD로 진단받으면 각종 편의제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ADHD부모가 정치인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자녀들의 권익을 주장해온 결과였다.


그리고 1980년 진단명이 ADD(주의력결핍장애)로 바뀐다. 과잉행동은 나이가 들면서 좋아질 수도 있으며 과잉행동만 있는 아이들은 나중에 적응에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반영한 변화였다. 과잉행동은 중요한 증상이 아니고 주의력결핍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고 이때부터 각종 미디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1987년 진단명이 ADD에서 ADHD로 바뀌고 이 진단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과잉행동 없이 주의력결핍만 있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전두엽이 감정이나 자동적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결과을 반영한 것으로 과잉행동/충동성 증상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주의력 결핍과 같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ADHD 진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영에서는 1851년에 미국 정신과 의사 사무엘 카트라이트가 자비로운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가려는 흑인 노예를 ‘드라페토매니아'(drapetomania)(drape는 노예, mania는 광기)라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규정한 것을 ADHD 개념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노예 주인이 자유를 원하는 정상적인 노예를 정신병으로 규정하듯이 어른이 말 안 듣는 아이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


1988년 톰 크루즈와 존 트라볼타로 인해 유명해진 유사종교인 ‘사이언톨로지’는 ADHD가 과잉진단, 치료되고 있다면서 매년 캐나다정신과학회장 앞에서 ‘정신과가 생사람 잡는다(Psychiatry kills)’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한다. 그들이 펼친 대대적인 안티 ADHD 캠페인과 로비는 소기의 성공을 거두면서 2년간 ADHD약 매출이 30% 감소하기도 했다. 사이언톨로지교의 교주인 데이비드 미스카바지는 뜻이 맞지 않는 교인들에게 협박, 공갈을 일삼으며 친형제와 성관계를 갖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유명한데 ADHD 뿐 아니라 ‘산후우울증’을 약으로 치료한 브룩 쉴즈를 톰 크루즈의 입을 빌려 맹비난한 바 있다. 그들이 부정하는 것은 ADHD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정신병이다. 그들의 교리는 인간은 오래전 지구에 보내진 외계인의 영혼이 윤회하고 있는 존재이며, 자신들이 믿는 초자연적 치료를 통해 육신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므로 오랜 정신과 치료에 지친 사람을 신도로 끌어 모으고 있다. 국내외에서 ADHD를 부정적으로 다룬 연구나 기사는 사이언톨로지가 대부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인언톨로지로 인해 추락하던 ADHD 환자 수는 1990년 초 두 가지 사건에 의해 중흥기를 맞는다. 하나는 특수교육대상자에 ADHD가 포함된 것이고 또 하나는 빈곤층을 위한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가 ADHD치료를 지원하기로 한 결정이다. 또 1999년 MTA 연구라는 대규모 국책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심리치료 단독의 효과가 약물치료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약해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2000년부터 콘서타, 애더랄, 아토목세틴 등 하루에 한번 먹을 수 있는 비싼 약이 쏟아져 나왔으며 제약회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광고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과잉처방이 우려될 정도로 처방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전 세계 55개 국가에서 ADHD 약의 처방량은 3배로 늘었고 의료비 지출은 9배 늘면서 ADHD는 바야흐로 전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각 국가들마다 처방을 규제하거나 지원하는 등 다양한 대응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처방량이 폭발하였고 크게 규제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www.adh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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