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14화 Part 2] “세 살 대인관계 여든까지 간다
[정신의학신문 : 윤희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저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23살 여자입니다. 언제부턴가 제 자신이 우정이나 연애 관계에서 생각이 먼저 앞서고, 거기에 맞춰 감정에 작위적으로 빠지려고 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 친했다가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면서 서먹서먹해진 친구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 별 일도 없는데 문득 ‘얘는 소중한 친구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그 친구가 중요하게 여겨져서 카톡을 보냈는데 짧은 답장이거나 제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면 ‘날 싫어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서운해 지더라구요.
이런 마음은 연애할 때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연애 초기에는 아무래도 서로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러면 저는 '빨리 가까워져서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조급함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상대방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좋은 점을 찾으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탁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되긴 해요. 뭔가 자연스럽게 빠지는 게 아니라 좀 인위적이죠.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이별한지 이제 1 주일 정도 지났거든요. 헤어진 후에 어떤 한 순간 상대방이 나와 맞지 않는 이유를 깨닫자 곧바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이별 통보를 듣고 정말 울고불고 매달렸었고,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이렇게 헤어지면 모든게 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죠. 정말 그런 감정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져 버리는 걸 느꼈어요. 이런 일이 전부터 몇 번이나 반복되다 보니 ‘친구든 연인이든 누군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있긴 할까’라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해요. 이렇게 먼저 생각이 있고 나서 감정에 빠져드는 모습이, 저 스스로가 무슨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저는 상대방의 말이 괜히 안 믿겨서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거나, 반대로 그냥 빈 말로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어서 오해를 할 때가 자주 있어요. 왜 이런지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어릴 때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저희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어린 저에게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하시는 편이었고, 칭찬을 하시더라도 속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고 있어서 믿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나요. 예를 들어 반에서 2등을 해서 칭찬을 받을 때에도, 본능적으로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1등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다지 기쁘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또 연인과 헤어질 때 상대가 “너는 착하고 예쁘니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말하면, 보통은 으레 ‘이 남자가 스스로 나쁜 놈 되기 싫어서 하는 방어적인 말일 뿐이고 사실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생각 한다는데, 저는 정말 말 그대로 믿었어요. ‘아,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구나. 내 가치를 이렇게 알아주니까 얘도 좋은 사람인거야.’ 이렇게요.
이렇다 보니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상대가 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감정이 커져서 매달리다가도, 제가 스스로에게 ‘저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나한테 안 맞아’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갑자기 애정이 차갑게 식어 버리더라구요. 감정이 생각을 따라서 극과 극을 달린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제 진심이 무엇인지도 가끔 헷갈려요.
제가 이렇게 감정에 쉽게 빠져서 잘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금방 변하고는 하는게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에 대한 원인과 고칠 수 있는 대처 방안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기도 하고 심리학 이론들을 찾아보는 등 본인 마음을 이해하시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님이 현재 보이는 모습의 원인을 ‘성인 애착’의 개념으로 설명 드려 볼께요. 성인 애착은 영아기때 형성된 애착 타입이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가설 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신과 타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4가지 타입으로 나뉘게 됩니다.
자신과 타인들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안정형,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타입 (두려움-회피형), 자신은 긍정적으로 보나 타인들은 부정적으로 보는 타입(거절-회피형), 그리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고 타인들은 긍정적으로 보는 타입(불안정-몰입형)이 있는 거죠. 보내주신 사연의 내용들로 미루어 볼 때 A님의 경우엔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타인들에 대해선 긍정적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불안정-몰입형’ (anxious-preoccupied type)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불안정-몰입형의 성인 애착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타인들은 내가 원하는 것만큼 나를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십니다. 또한 ‘내가 어떤 인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도만큼 그 사람은 나를 그 정도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걱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착 대상인 상대방에게 과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정 표현, 감정 기복, 대인관계에서의 걱정, 충동성이 높은 수준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특징이죠.
기억하기도 힘든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애착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타입이라는 것을 알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지만 본인의 대인관계 패턴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고, 한편으로 지금까지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성격이라면 앞으로의 경험에 따라 또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성격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불안정-몰입형 애착 패턴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 대인관계 문제의 시작이 됩니다. 나 스스로의 생각보다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저 사람에게는 내가 어떤 존재지?’라는, 스스로는 대답을 찾아낼 수 없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아, 내가 불안정 애착 패턴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또 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의식하기만 해도 그러한 불안에서 일찍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한가지 더 A님은 갑자기 떠오르는 여러 감정들을 억압, 억제하고 인지적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고, 그러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은 결국 상처 받기 싫고 감정적으로 힘든 것을 회피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거든요. 사실 ‘생각, 감정, 행동’ 이 세가지는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라서 생각을 먼저 하고 감정이 나중에 따라온다는 A님의 모습이 이상한 것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 거 같은데, 유독 나만 이상한 걸까?’식의 걱정을 하는 것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자존감이 낮아서 보이는 모습일 수 있어요.
이렇게 드리는 조언들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이게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이었다면 이미 고민에서 벗어나셨겠지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의 대인관계 경험에서 변화를 준다면 이런 패턴이 분명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대인관계 특성에 대해 정확히 앎으로써 변화의 첫 걸음을 떼실 수 있어요. 그리고 혼자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가는 것이 힘들 때에는 면담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거에요.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뇌부자들 드림.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습니다]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e=22370024
아이폰 Podcast : https://itun.es/kr/XJaKib.c
팟티 : https://m.podty.me/pod/SC1758/9088915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