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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Mar 24. 2018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힘든 걸까?

- 적응장애 이야기(1)

[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뿐 아니라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들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질환들은 유전적인 요소가 강해 조금만 스트레스가 심해져도 쉽게 발생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신과 질환 중에는 그 원인을 생물학적인 어떠한 것이 아닌 직, 간접적인 외상, 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명시해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Trauma-, Stress- related Disorder로 분류되는 질환들인데,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 적응 장애(Adjustment disorder)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중 급성 스트레스 장애PTSD의 경우 스트레스의 정도가 누가 봐도 극심한 정도여야 진단이 가능합니다. 지진, 홍수 등의 자연재해라든가 전쟁, 성폭행, 강간, 살인의 위협 등 누가 보더라도 견디기 힘든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후 일련의 증상을 호소할 때 진단이 가능해요.

반면 적응 장애의 경우 스트레스의 강도와 관계없이 스트레스 발생 3개월 이내에 우울, 불안, 감정조절의 어려움, 불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찾아올 경우 진단이 가능합니다.



‘군대라는 게 남자들이 다 한 번씩은 가는 거잖아요? 근데 전 왜 이렇게 견디기 힘든 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랑 모여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 손발이 떨리고 너무 힘들어요.’


‘취직을 하기 전엔 취직만 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회사에 들어오니 더 힘들어요. 특히 선임이 뭐라고 하면 온몸이 긴장되고 식은땀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퇴근 후에도 그 긴장이 풀리질 않아서 잠도 못 자는 것 같아요.’


사진_픽사베이

적응 장애는 생각보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는 일반 인구의 2-8%가 겪는다고 하네요. 적응 장애는 결혼, 취직, 진학, 이사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적응 장애는 정신과 내에서도 ‘가벼운 질환’으로 치부되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일정한 적응 기간을 겪고 나면 증상도 씻은 듯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트레스와 멀어지면 금방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막상 적응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뵙다 보면 그리 쉽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면담을 하다 보면, 적응 장애 환자들은 자신을 힘들게 한 환경과 적응 장애의 증상 이외에 다른 적과도 싸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남들은 다 잘 하는데 나만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본인 내부로부터,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양 방향에서 환자를 위협해 옵니다.  



내부로부터의 공격: ‘나’에 대한 자책, 좌절, 그리고 자존감 손상


적응 장애를 겪게 되는 원인은 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통과 의례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진학, 취직, 결혼 등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겪고 넘어가는 과정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별문제 없이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적응 장애 환자들에게는 큰 압박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남들이 다하는 걸 나만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하고 좌절하기도 하고요, 내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해 자신의 어려움을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게 됩니다. 늘 혼자 고민하고 점점 고립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심할 경우 그저 특정한 환경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인데 이미 사회의 부적응자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내 동료들은 이미 나보다 한 발 나아간 것 같으니까요. 



외부로부터의 공격: 이 정도도 못 견디니? 나도 다 해봤어!


어쩌면 주위의 환경은 더 가혹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너무나도 큰 정신적 외상을 입은 PTSD 환자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공감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 지, 왜 이렇게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생각보다 적응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인색합니다. ‘나도 다 겪어봤기 때문에’ 상대방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잘못 받아들이기 쉬워요. 이런 인식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을 공감과 격려의 대상이 아니라 질타와 무시의 대상으로 단정 짓게 되기 마련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환자에게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전달이 되고, 환자들은 또 한 번 괴로워하고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런 안팎에서의 괴롭힘은 적응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만듭니다. 그 결과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한 채 끝나거나, 더 심한 정신과 질환을 겪게 되기도 하지요. 저는 적응 장애도 결코 가볍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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