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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Mar 19. 2018

내 죽어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


[정신의학신문 :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다. ‘미투’는 약자로서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그 실체인데 대부분의 ‘미투’는 남성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억울한 여성들의 목소리이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는가? 아마도 과거엔 더 심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한 여인에게 남겨진 성폭력과 그녀의 ‘미투 운동’이 있었던 500여 년 전의 이탈리아로 함께 가보자.


1599년 9월 11일 로마의 산탄첼로 다리광장에서는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아버지의 성학대에 못 이겨 아버지를 살해한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와 그녀의 가족들의 처형이 있었다. 그날 처형장의 앞자리에는 많은 화가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당시 로마에서 꽤 이름난 화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가 있었다. 그에게는 똘똘하고 예쁜 딸인 아르테미시아(Artemisia Gentileschi, 1593-1651)가 있었는데 그는 장차 어린 딸을 화가로 키우고자 했고, 역사적인 처형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딸을 무등 태워주고 있었다. 이날 오라치오는 처형 장면을 보러 멀리 제노아에서 온 젊은 화가 한 명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 1578-1644)였다. 타시와 어린 아르테미시아는 이날 잠시 만났지만 그들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림_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_구글무료이미지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였다. 12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동생들을 돌보기도 했다. 아버지 오라치오는 이런 딸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딸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으며 그 애착이 너무도 강해 딸을 구속하기도 했다. 1611년 그녀가 18살 되던 해 아고스티노 타시가 다시 로마에 왔다. 그는 팔라초 델 퀴리날레의 프레스코 벽화작업에 초대되어 이 작업을 책임지고 있던 오라치오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워지게 되었다. 당시 결혼 적령기를 앞둔 딸의 미술교육과 감시가 필요했던 오라치오는 그 역할을 아고스티노에게 맡기게 되었는데, 이 일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 아고스티노는 본디 행실이 바른 사람이 아니었다. 창녀를 구타해서 구속되기도 했던 그는 아르테미시아를 교육하다가 그녀를 강간하고 만다. 그때가 1611년 5월 아르테미시아가 18살이었던 때였다.


아르테미시아는 크나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이에 엄청나게 화가 난 오라치오는 일 년 후 아고스티노를 고소하게 되었다. 아마도 딸을 겁탈했으니 책임지라는 협상을 하려다가 이에 아고스티노가 응하지 않자 고소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학자에 따라서는 아르테미시아와 아고스티노가 사랑하는 사이였고 이를 질투하고 격분한 아버지가 이성을 잃고 고소했다는 설도 있다). 약 7개월의 싸움 끝에 아르테미시아가 승소하고 아고스티노가 경미한 벌을 받게 되었지만 그녀의 아픔은 승소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손가락질도 하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녀는 로마를 떠나 서둘러 결혼하고 아버지로부터 독립도 했지만 남편은 무능했고 두 딸을 혼자서 양육해야 하는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_구글무료이미지


그녀의 작품 속에는 유독 남성을 공격하는 여성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주제가 바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이다. 그녀는 이 주제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렸다. 유디트는 유대 여성으로 티란의 베툴리아 지방 출신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는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을 먹이고 밤을 지센 후 그의 목을 친 여인이었다.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논개 같은 여인이다. 성서에서 그녀는 유대의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남성들에게 결코 평온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자에게 잘못 걸리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 이야기는 남자를 잡아먹는 치명적인 여인 즉, 팜므파탈(femme fatale)이기 때문이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주제는 많은 화가들이 다루었던 주제인데 유독 그녀의 작품이 더욱 강렬한 이유가 있다. 그녀의 유디트는 아름답지도 않고 연약하지도 않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억센 팔뚝으로 과감히 장수의 목을 자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린 유디트가 바로 자신을 성폭행한 타시에 대한 복수를 상징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간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미래가 촉망되던 한 여인은 순간적인 욕정의 피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해자로서만 살지 않았다. 여성화가로서 불리한 위치였지만 실력으로 당당히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남성에게 의존해서 살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서 살아가며 두 딸을 화가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수백 년을 앞서 살았던 진정한 ‘미투 운동의 선구자’이자 ‘해방 여성’이었던 것이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을 보며 여성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바라고 남성들은 ‘여자를 한 맺히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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