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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Mar 31. 2018

쓰러진 사람보다 그 상황에 주목하는 광기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이 흘린 피를 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를 흘린 사람을 구해야 하는가

 - 나이트 크롤러, 2016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불법으로 철조망, 맨홀 등의 공공기물을 뜯어 팔아가며 살아가던 청년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은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앞다투어 영상을 찍어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사고 현장에 대한 영상을 방송국에 팔면 큰돈을 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루이스는 자신도 싸구려 촬영 장비를 장만하여 사고 현장을 찍기 시작한다. 한 차례, 두 차례 경험이 늘어가면서 그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영상일수록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차 그는 자극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 사건 현장을 조금씩 조작하게 되며 조작된 영상을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그는 영상을 얻기 위해 사건 자체를 일으키려는 지경까지 도달하게 된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정보전달’과 ‘공익성’이라는 본질을 잃은 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풍자한 작품이다. 주인공 ‘루이스’의 도덕적 타락과 이를 용인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때로는 호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찟하게 다가온다. 단지 한 사람의 일탈에 대해 다룬 영화가 이렇게 섬뜩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가 ‘공익’ 보다는 ‘이슈’를 제공하고자 하는 영상매체와 ‘사실’ 보다는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를 날카롭게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평소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영리한 루이스는 대중들이 어떠한 영상을 원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영화 속에서 소위 잘 팔리는 영상들은 충격적이고 잔인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료하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들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대중들은 이러한 영상에 매혹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의 정서발달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 정서적 발달이 충분하지 않은 유아는 양극화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쾌감, 안전함, 사랑 등의 긍정적인 자극들은 내부에 있다고 여긴다. 반면에 불쾌감, 위험, 공격성 등의 부정적인 자극들은 비록 그 자극이 자신의 내부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마치 외부에서 온 것처럼 투사된다. 이처럼 내부 환상과 외부 실재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하는 유아에게 세상은 악하고 공격성이 가득 찬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그러나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살던 유아는 세상 전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즉, 매우 악하고 공격적인 감정들이 때로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악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였던 외부 세상에서도 이를 극복할만한 사랑과 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외부 세상과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관계를 맺는다. 다만, 이와 같은 성숙한 관계 설정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매우 복잡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하기에 인간은 쉽게 양극화되고 단순화된 세상으로 퇴행한다. 범죄자의 손에 매우 잔인하게 살해된 선량한 사람들의 영상이 비싸게 팔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한없이 자극적이며 단순화된 정보의 전달 속에서 사람들의 뇌리에는 ‘두려움’과 ‘공포’ 등의 말초적인 자극만 남게 되고 원인이나 극복 방안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게 된다. 사건의 다양한 사정과 이유, 배경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모든 악과 불행의 원인이 한 곳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해하기 편하고 알기 쉽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건의 자세한 경위와 인과관계, 피해자의 고통은 집안에 남아있는 총알 흔적과 흐르는 피로 대체되고 선량한 피해자의 집안에서 발견된 마약은 보도가 미루어진다. 결과적으로 뉴스는 점점 현실보다 더더욱 자극적이고 선과 악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루이스는 말한다.


“어떤 사건이든 TV에 나오면 정말 리얼해져요.”라고.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스 또한 철저히 양극화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을 그가 가진 지위가 얼마나 높은가와 이용가치가 얼마나 많은가로 나눈다. 따라서 그는 방송국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홍보하고 어필하려고 하며 그를 위해 일하는 인턴은 홀대하고, 끝내는 죽게 내버려두기까지 한다. 루이스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극적인 장면을 얻기 위해 도로 한가운데로 옮기는 장면은 인간의 불행을 구제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그의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가치관을 잘 드러낸다. 결국 그는 영화 마지막에 좀 더 자극적인 장면을 위해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에서 경찰과 무장한 범인의 총격전을 유도하는데 이른다. 자신 때문에 총에 맞은 인턴의 죽음을 무표정하게 촬영하며 ‘나의 위치에 있었다면 너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그는 대 성공을 거둔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만들었으며, 방송국은 그가 찍은 자극적인 영상을 더욱더 원하게 되었다. 반면에 세상은 더욱 불행해졌다. 그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다지기보다는 자신 주변의 이웃들을 혐오하고 경계하게 되었으며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뉴스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참하게 죽은 인턴의 자리는 또 다른 인턴으로 채워지고 이들은 전임자가 그랬듯이 또다시 이용당하고 착취당할 것이다.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오늘도 수많은 자극적인 뉴스가 세상에 송출된다. 그리고 세상은 학대한 자와 학대받은 자, 저지른 자와 당한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자와 여자로 끊임없이 양극화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혐오와 세상에 대한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만연하지만,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선과 악으로 이분된 세상에서는 악을 처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우리에게 묻는다.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인가, 아니면 피를 흘리는 사람인가.


            

사진_나이트 크롤러(수입:누리픽쳐스/배급:스톰픽쳐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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