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세기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과 치료가 급변하는 시기였습니다.
관상학(physiognomy)은 정신병 환자를 얼굴만으로 구분하려는 시도의 학문이었습니다. 관상학은 현재도 의학의 특정 분야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리차드 대드(Richard Dadd)의 그림을 중심으로 정신질환을 관상학으로 설명하려 했던 당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찰스 벨 (Sir Charles Bell, 1774-1842)
벨은 스코틀랜드의 의사/해부학자로 해부학, 신경학, 안과학뿐 아니라 정신질환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벨마비'는 그의 신경학적, 해부학적 지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는 특히 정신이상(insanity)이 얼굴에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벨은 1806년 "Essay on the Anatomy of Expression in Painting"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physiognomy(이하 관상학)라는 오래된 "과학"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사람의 얼굴은 내면의 상태를 반영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 이후 정신이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었는데, 소위 미친 사람은 감정이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증상에 따라 영구적으로 얼굴이 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승과 같은 야만적인 상태로 변하면서 의미 있는 표현은 없어지고, 공격적인 성향이 들끓는 상태로 변한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그림이 벨이 묘사하는 정신병 상태의 모습으로 이전까지 정신병 환자를 대하던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신병자에 대한 시각은 현실을 왜곡해서 표현하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원시적 방법으로 정신질환을 평가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관상학은 조금 더 분화하여 정신질환에는 특유의 독특한 표현이 있다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모리슨(Sir Alexander Morison, 1772-1840)
새로운 관상학의 유행은 모리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최초의 교육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정신의학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관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 장 에스퀴롤(Jean Esquirol)의 컬렉션을 본 뒤입니다. 그는 200여 개의 정신병 환자 얼굴 석고 캐스트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모리슨도 그만의 자료를 모아 1840년에 책(the physiognomy of mental disease)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는 108개의 도해가 수록되어 있으며, 특정 종류의 정신증과 얼굴 표정의 연관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얼굴의 형태는 마음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통해 환자들의 스케치를 그리게 하였고 이 스케치들은 석판화(lithigragh)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이 그림들을 왕립의사협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에 기증했고 현재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모리슨은 관상학을 진단에 유용하게 사용하려 했습니다.
얼굴 표정만 보고도 복잡한 정신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것이지요. 그의 작업은 벨과 달리 단순하지 않았으며, 독특한 정신질환자의 표현의 범위를 조금 넓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도 역시 비판을 받았습니다. 벨이 지나치게 정신질환에 적대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했다면 모리슨은 정신질환의 묘사가 일반적인 것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일반인이 볼 때 어떤 종류의 정신질환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리차드 대드가 그린 정신병의 모습들
대드는 벨의 논문을 보는 것을 즐겼다 합니다. 그러나 벨의 정신증에 대한 해석과는 달리 대드의 작품은 미친 사람의 표정보다는 일반적인 외형에 대한 묘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을 보면 햄릿이 처음으로 그의 아버지 영혼을 보았을 때의 놀란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벨이 묘사한 것과 같은 야만적인 표현보다는 이성적인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드의 정신병 증상이 심해져 1844년 베들렘 병원에 입원한 후에는 모리슨의 영향으로 관상학과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발병 이후에도 대드의 정신병 환자에 대한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즉, 벨이나 모리슨과 같이 표정만으로는 정신병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atred는 평소 셰익스피어에 깊은 관심이 있던 대드의 시리즈 작 중 하나입니다. 헨리 6세가 이성을 잃고 끔찍한 살인을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러 명의 사람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해했던 인물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도 정신병 환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얼굴 표정은 알기 어렵습니다.
대드의 유명한 그림으로 베들렘 병원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정신병 환자인 여성을 묘사한 것인데 남성의 얼굴이 그려진 것에 대해 모델이 남자밖에 없어 그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여성의 얼굴 표정만 가지고는 그가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대드는 그녀의 특이한 팔 동작과 같은 어색한 몸짓, 어수선한 옷차림, 기이한 장식품 등으로 정신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864년 대드는 베들렘에서 브로드무어(Broadmoor)에 위치한 새로운 수용시설로 옮기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리슨 상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에서도 대드의 정신병 환자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모리슨 상은 당시 오랜 기간 수용시설에 있던 정신병 환자들에게 주어지던 일종의 인증패와 같은 것입니다.
대드는 이 그림을 통해 정신병 환자와 정상인을 특징적으로 묘사하려 하였습니다.
치료받기 전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녀는 모두 속살이 보일만큼 옷차림이 헝클어져있고, 자연을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취하고 있는 포즈 역시 일반적으로는 가지기 쉽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치료를 받게 된 이후 남녀는 모두 단정한 옷차림에 교양이 있어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려 대화나 작업을 하는 등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한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모리슨이나 다른 정신과 의사가 이 그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표정을 통해서는 누가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관상학은 분명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보면 비판받을 수 있는 분야입니다. 정신질환의 특징적인 표현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진단에 이용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오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합리화해주는 학문이 아니었을까요?
참고
Dementia. Psychiatry in pictures. BJP 2004, 185:12-1.
Richard Dadd: The Patient, the Artist, and the “Face of Madness”
Journal of the History of the Neurosciences, 24:3, 213-228.
http://www.tate.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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