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친구한테 어떤 말로 위로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섣불리 한마디 하기가 무섭고 괜히 어설픈 쉬운 위로가 부담이 되거나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고 겁이 나요. 상투적인 말보다 정말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위로'라는 것이 쉽지 않죠. 어떤 말이 필요한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매 순간,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라서 원칙을 알아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이나, 심리상담 하시는 전문가 분들도 이런 어려움을 겪으시나요?
저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요.
어떤 때는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그냥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고 나면 "아, 나는 좋은 의사가 못 되는구나"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어요.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가셨다',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어떻게든 위로해드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그러다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래요. 그래도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나면 다들 고마워하세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는데요.
위로라는 것도 좋은 위로가 있고, 그렇지 않은 위로가 있을까요?
어떤 마음이냐가 중요하겠죠. 위로에 내 진심, 내 감정 에너지가 얼마나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거창한 이야기, 옳은 이야기를 해도 하나도 위로가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위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면 그건 분명히 전달돼요. 말로 하지 않아도요.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내가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냐,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냐'가 더 중요하죠.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 즉 메시지보다는, 메시지를 감싸고 있는 메타-메시지가 중요한 겁니다. "내 진심을 너에게 꼭 전달하고 싶어"라는 메타-메시지 말이죠.
진심을 담고 있다면 어떤 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욕쟁이 할머니를 보세요. 아무리 욕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고, 그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를 믿어준다, 이런 느낌이 전달되면 그 어떤 말도 효과가 있어요.
진정성 있게 들어주거나, 집중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지 않은 채 불쑥 "야 털어 버려. 술이나 마시고 잊어버려" 이렇게 툭 던지니까 문제인 거죠.
친구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고, 그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서 "그래도 네 마음에서 그걸 털어버렸으면 좋겠어. 같이 술 한 잔 하면서 잊어버리자"라고 하면 같은 말을 해도 위로의 효과가 나오죠. 그 사람에게 내어준 시간과 진심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방이위로를 받을까요?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나요?"
우선 원칙을 말씀드릴게요. 개별적인 상황은 그때그때 다르니까.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하시면 돼요.
우선 첫 번째는, 상대의 감정을 읽어 주는 것입니다. "화가 났구나, 우울했구나"라고요. 이런 것을 명료화(validation)라고 합니다. 상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나도 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로 확인해주는 것이지요. "마음이 많이 아팠겠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겠다",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겠다"처럼요.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정상화(normalizing)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해. 그런 상황에서는 눈물이 나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야." 이런 거죠. 상대의 감정 반응이 그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죄책감이나 부적절감에 휩싸이지 않거든요.
세 번째는 상대방의 진정한 가치를 승인(affirmation)해주는 것인데요. 혹은 확인, 지지라고도 합니다. 상대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소중한 존재다"라는 것을 표현해주는 것이죠. "이렇게 힘든 일을 겪었지만,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라고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힐링’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했잖아요. 그만큼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인데, ‘위로’, 왜 중요한가요?
돌직구와 따뜻한 말 한마디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하냐, 무엇이 더 필요하냐. 이런 질문으로 바꿔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상처의 원인을 밝혀내고, 분석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전문가가 잘 분석해줘도 사실 그건 대부분 스스로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다만 그걸 실천한 마음의 에너지, 온기가 없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죠.
마음이 따뜻해지면 사람은 움직이게 되어 있거든요. 더 나은 방향, 치유하는 방향으로요. 스스로 위로를 해주든, 다른 사람의 위로를 받든, 마음이 따뜻해지면 사람은 변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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