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나서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났다.
보고 싶다는 감각이 올라왔고,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연락할까 수십 번 고민했다.
그 사람을 아직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그리워하는 게 정말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내 모습인지.
그때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고,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었고, 주말에 갈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역할들이 사라진 것일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관계 정체성 상실'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특정한 역할과 정체성을 갖는다.
그 관계가 끝나면 그 정체성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움의 실체가 사람이 아니라 그 정체성인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불편한 진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채워주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외로움, 인정받는 느낌, 누군가의 우선순위가 되는 경험.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리움이라고 뭉뚱그린다.
하지만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됐을 자리에 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딱 한 번만 물어보면 좋겠다.
내가 그리운 게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있을 때의 나인지.
그 답이 후자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