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4)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변화가 참 많았습니다. 5년간 근무했던 병원을 떠나 회사로 이동하고, 통근을 하다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도 했습니다. 바쁘게 적응하던 중에 우연히 사내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회사 적응에, 힘에 부치는 통근에, 중단된 레슨까지 하지 못할 이유는 많았지만, 일단 해보기로 결정했어요. 바이올린을 배우고 어설픈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생생함과 즐거움 덕분에, 회사 적응과 힘에 부치는 통근에 오히려 힘이 될거란 기대를 품게 되었거든요. 레슨은 받지 못하더라도 합주연습으로라도 바이올린과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토요일 아침에 모여 합주연습을 했어요. 어떤 날엔 몸이 무겁고 어떤 날은 약속으로 빠지기도 했지만, 일단 가서 연습이 시작되면 3시간이 무색했어요. 지휘자선생님의 디렉션에 따라 아직은 희미한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결'에 가닿기 위해 애썼어요. 어떤 프레이즈를 반복해서 연습하다가 바이올린을 내릴 때에는 옆자리의 단원과 눈을 맞추며 미소 짓기도 했습니다. '어렵네요 하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무엇보다, 함께할 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어요. 어떤 경계나 방어 없이 포르테에서는 조금 더 강렬해지고 피아노에서는 속삭일 수 있었어요. 혼자서는 표현되지 않아 답답하던 감정이, 함께 음악에 몸을 맡기며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었어요. 이전에 바이올린과 저와의 관계에 대해 썼던 글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피아니시모의 작은 소리라도 온전히 울리는 소리를 내려면 자신 있게 활을 그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해요. 그런데 내 연주에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소리'를 내기 급급하면 활을 현에 제대로 붙이지 못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눈을 감고 인식의 범위를 좁히는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함께하는 방식으로도 강렬함과 연약함을 유연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마치 내담자가 상담자를 만나서 자신의 경험을 선명하게 느끼고 표현하게 되는 변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합주연습을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지휘자선생님과 함께하는 단원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함께하며 즐거움 만으로는 벅차기 시작하더군요. 1,2주마다 합주연습에서만 잠깐 느낀 것만으로는 그 음악에 충실할 수 없었어요. 들었던 해석이나 느꼈던 음악은 희미해지고, 그만큼 테크닉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했거든요. 그렇게 3개월만에 개인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게으르고 느리게 그러나 아주 포기하지는 않는 학습자이구나 느꼈어요. 함께 음악을 만들며 즐거운 만큼 혼자서 테크닉을 익히고 느끼면서 자유로워져야 되는구나 새삼 느꼈던 거예요.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리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바이올린과 연결된 몸이라는 악기가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저 반복하는 연습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반복하는 게 중요했어요. 혼자 연습하며 테크닉적으로 노력했던 부분을 적어보자면, 첫째, 왼쪽 어깨에 점점 들어가는 힘은 빼고 귀와 멀어지도록 아래로 내리기, 둘째, 포지션 올라갈 때 손가락 끝을 강하게 짚되 손목은 꺾고 손아래 쪽을 악기에 기대지 않기, 셋째, 현을 넘나들 때는 오른손을 꺾어주며 활이 현과 잘 붙도록 하되 왼쪽 손목도 함께 꺾어서 가볍게, 넷째, 왼손 넷째 다섯째 손가락에 힘주어 음을 짚기.
쓰다보니 길어지네요. 그래도 오늘은 남김없이 적어보고 싶어요. 마침내 10월 공연날짜가 다가왔습니다. 공연을 앞둔 주에는 수목금 매일 저녁 퇴근 후에 3시간 정신없이 연습하고 집에 가서 꾸벅 잠들기 바빴어요. 수능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괜스레 식욕이 떨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다른 자극들에 대한 관심이 잠시 꺼지고 단지 일하고 연주하는 데에만 빠져있었어요.
공연 전날 리허설을 마치고 집에서 셔츠를 다릴 때에는 지난 5개월이 떠올라 괜히 비장했고, 공연장으로 향할 때에는 굳이 가을에 어울리는 향수를 뿌리고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으며 기분 좋은 긴장을 느꼈어요. 저에게는 연습하고 공연에 오르는 지난 5개월의 순간들이 '굳이데이'였어요.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고 연습을 게을리해도 괜찮은, 그럼에도 하기만 하면 즐거운, 그런 날들이요. 처음 기대했던 대로 새로운 회사와 동네에 정을 붙이는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쁨을 보여주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 우리는 서로 괜히 소리 높여 격려하고 기뻐했어요. 모두가 긴장했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지만, 그만큼 벅차오른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무대는 생각보다 넓고 관객석은 더 넓었어요. 그 속에서 가볍게 현을 튕기기만 해도 소리가 투명하게 울리더군요. 첫곡을 시작하는 지휘봉이 움직일 때, '정말 시작이야?' 의심하며 박자를 놓쳤지만 괜찮았어요. 더이상 악보의 음표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실수를 했더라도 상관없는 상태로 이미 몸에 들어와버린 음악을 따라가고 있었어요.
많은 연주자와 지휘자와 관객이 하나의 버블이 되어 숨쉬는 것 같았어요. 지휘자선생님의 박자와 신호를 가만히 지켜보고 도나우강을 시작할 때에는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결'이 되려고 애썼어요. 옆자리에 앉은 1바이올린 객원 연주자의 과감한 리듬에 맞춰서 나도 음악을 느끼고 춤추었어요. 저 멀리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풍성한 저음, 귀를 때리는 호른과 트럼펫의 소리, 플루트의 구슬픈 솔로, 물 흐르듯 아르페지오를 당기고 통통 튀던 피아노 솔로도 들려왔고요. 또 동료 선생님의 격려와 초콜릿, 관객석에서 마주친 기다림의 눈빛도 기억이 납니다. 오기로 한 친구들은 어디에 있나 궁금해지다, '모든 관객이 친구구나, 우릴 맞이하러 왔구나' 싶었어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혼자서 왜 그렇게 웃냐'라는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실수해도 후회되지 않을 수 있다니, 이렇게 몰입하며 빠져들었다니, 믿기지 않았거든요. 음악과 연주자와 지휘자가 서로를 느끼면서 여럿이자 하나가 된 그 순간이 뭉클하고 그 자체로 충분했어요. 누군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그 한순간을 위해서, 사라질 순간을 위해 마음을 모아 애쓴다는 게 좋았어요.
공연을 마친 이제야,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회사생활을 버텼을지 모르겠다'는 단원의 마음, 아직 어린 딸과 남편에게 미안해서 고민하다 1부라도 참여하기로 결정한 단원의 마음, 공연을 마치고 '지난 오케스트라 10년이 평생의 즐거움'이었다고 회고하셨던 단원의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헤아려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하는 일이 주는 낭만과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지난 5개월과 10월 28일이 제게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바이올린 도전기]
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1): 어느 날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