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2)
[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이후로도 여전히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습니다. 시작한지 어언 일년 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시작해서 4월 공연을 위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장대는 실력에도 받아준 오케스트라에 무한 감사한 마음입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이따금씩 스스로에 대해서 또다시 깨닫고 마주하게 되는데요, 악기를 통해서 만들어나가는 음에 연주자의 인생이 담겼다는 말을 실감해요. 조금 과장해보자면 바이올린 연주에는 그 사람이 살아오고 고민한 흔적이 들어있어요.
Type A 성향이 의심될 정도로 급한 편인 저로서는 뭔가 앞에 놓이면 잘하고 싶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이런 성향은 빠르지만 실수가 많은 성과물을 내거나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을뿐더러, 쫓기듯이 살기 때문에 긴장감이 높고 쉽게 지치게 되죠. 이런 단점을 알면서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살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연주를 하면서 더 강렬하게 느낍니다. 박자가 점점 빨라지면서 음악은 음악대로 망가지고 음정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거든요.
결국 백투더베이직. 메트로놈을 켜놓고 아주 느린 박자로 꼼꼼히 음을 짚어내고 박자를 지키는 연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름답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빠른 우회로는 없듯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삶에서 빠르게 우회해서 '달성'하는데 몰두하는 건 긴장만 있을 뿐 여유도 재미도 없거든요. 대신에 다가오는 어려움, 불안, 즐거움, 새로움을 충분히 겪어내면서 '과정' 자체를 누릴 필요가 있어요. 결국 인생은 피할 수 없는 그 과정들의 연속이기 때문이에요.
엊그제는 이런 깨달음도 있었어요. 피아니시모의 작은 소리라도 온전히 울리는 소리를 내려면 자신 있게 활을 그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해요. 그런데 내 연주에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소리'를 내기 급급하면 활을 현에 제대로 붙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현의 떨림이 악기를 울리지 못하고 불투명한 소리에 그치고 맙니다.
맑고 깊은 소리를 내려면 조금 소리가 튀더라도 일단 활을 현에 충분히 붙여서 과감히 그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위험을 피하고 싶어서, 책임지기 두려워서, 하긴 하는데 흐릿하게 비껴있는 태도는 풍성해질 삶의 가능성을 단조롭게 만들기 쉽습니다. 위험 없는 일상이 안전할지 몰라도 경험과 욕구를 자유롭게 누리기는 어렵죠. 가끔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라는 의뭉한 태도에서 벗어나 내가 무얼 더 좋아하는지 무얼 더 해보고 싶은지 과감하게 결정하고 행동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오늘도 급해지는 박자와 함께 제 마음의 속도를 알아차려 봅니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고 있는 곡 중에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으로 글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