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책 <미움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에 안착하면서 한동안 아들러 심리치료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활발했다. 심리학 교수님들 왈 '요즘은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콕 집어 요청해오곤 한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아들러 심리학은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전환점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학파를 형성하거나 구체적인 치료방법이나 효과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그만큼 심리치료는 점점 구조화된 방식으로 객관적인 효과성을 검증하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자와 연구자 모두 단순히 경제성과 효과가 심리치료의 전부는 아니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1940-50년대에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이전에 소개한 인간중심 치료와 함께 심리치료의 흐름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 심리치료
Alfred Adler는 원래 정신과 의사로 출발해 1900년대 초반의 정신과의 흐름대로 Freud의 전통적인 정신분석 수련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여러 병을 앓으면서 약했던 그는 학교 성적도 형과 비교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느꼈던 열등감이 삶을 발목 잡았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은 심리치료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점차 Freud의 정신분석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개인 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제안한다.
개인 심리학이라는 이름은 왠지 생소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을 생각, 느낌, 기분, 행동과 같이 다양한 측면들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로 본다. Freud가 그토록 중요시 여겼던 무의식, 즉 성적/공격적 욕구와 충동에서 벗어나는 시도였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본능적인 욕구나 충동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힘든 것은 잘못된 목표와 관점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실수와 실패로 낙담해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사람들 속에서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수치심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그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시도인가?
아들러는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어떤 양육, 형제관계에 의해 행동이 칭찬받고 처벌받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알게 모르게 경쟁으로 작용했을 형과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런 경쟁 관계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형의 성취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테고, 그의 건강과 낮은 성적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핀잔의 대상이었을 수 있다. 그러면서 더 칭찬받고 주목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성취하는 방향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의 목적은 미래에 있다. '더 칭찬받거나 덜 처벌받기 위해서' 움직이는 존재이지, 단지 과거의 상처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같은 부모로부터 자랐더라도 철수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가 하면 영수는 소수의 친구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관계 속에서 각자 칭찬받고 처벌받으며 내면화되는 규범은 모두 다르다.
가족 관계가 우리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초점을 넓혀보면 칭찬과 처벌은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계속된다.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점차 사회로 나가면서 학교, 직장에서 요구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적인 규범과 평가들을 듣고 배우면서 점점 우리 내면에 자리 잡아 수치심Shame을 느끼게 한다. Brene Brown은 Ted Talk에서 남자들은 '약함'에 대한, 여자들은 '집안일 양육과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냄'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기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고 발표했다. 혹시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아들러의 심리치료에서는 내담자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기억을 소환한다. 실제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초기 기억은 매우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 안에 내재된 실수들을 함께 점검하고 수정해나간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혹시 사랑받지 못할 존재인가, 능력이 없는 존재인가, 무의미한 존재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오류들이 있지 않은지 살펴본다. '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도 미리 제한하고 시도하지 않게 만든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초기 기억을 함께 다루면서 공감하고 수용하면서도 그 속에 오류는 없는지 확인한다. 치료자의 공감은 '당신을 누구도 원하지 않을까요? 과연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까요? 당신을 알게만 해준다면 당신을 좋아할 수 있을 텐데요'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더불어서 아들러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분석하게 되는데, 자신과 형제자매에 대한 묘사,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 형제자매와의 관계, 부모 자녀관계, 부모에 대한 묘사 등을 총체적으로 정리한다. 이 때 치료자는 함께 협력하는 존재로서 분석을 촉진할 뿐 권위자가 아니다. 내담자의 삶과 가치에 대해서는 내담자가 전문가이다. 그러면서 친구, 연인, 동료, 부모, 직장생활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나아지길 바라는 점에 집중한다. 자신의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숨겨진 또 다른 목표를 함께 찾아나간다. 모호한 충동과 욕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와 그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을 파악한다.
아들러의 심리치료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전까지의 심리학은 단순히 인간 내적인 측면에 몰두해 있었다면, 아들러는 인간이 사회/집단 맥락 안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많은 문제는 사회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삶에서 소속감과 인간관계를 중요한 요인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치료에서 불필요한 목표에 대한 추구를 걷어내고 나면 함께 살아나가는 존재로서 결국 배려, 용기, 공감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나가며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우리를 과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능동적인 존재로 보았다. 우리는 본능적인 충동과 욕구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인 존재로서 행동들이 칭찬받고 처벌받으면서 원하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심리치료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미래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새롭게 시도해보는 과정이다. 그 여정에서 내담자는 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그로 인한 행동을 이해하고 수정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실천하는 존재에 가까워진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