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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Jul 25. 2020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오해와 진실

a.k.a Cognitive-Behavioral Therapy, CBT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상담' 혹은 '심리치료'도 아닌, 인지행동치료(이하 CBT)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이름이 주는 그 무게 때문에 치료에서 CBT를 꼭 적용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내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사례들을 몇 차례 진행하게 됐습니다. 대학원 실습에 비해서 동기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집단이기도 했지만, 저의 내공 부족으로 치료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부족한 만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Persons의 <CBT 사례공식화 접근>, Burns의 <Feeling good>처럼 바이블로 알려져 있는 책을 뒤늦게 읽고 치료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짜 CBT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개 제가 느꼈던 불편함과 오해는 CBT를 구성하는 인지적, 행동적 요소 중에서도 생각을 다루는 '인지적' 요소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CBT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들을 해소하면서 가까워지는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깨달은 진실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 CBT는 지시적이다.


- 인지적 개입에는 논박이 필요할 때가 있고, 매 회기 과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점들이 지시적이고 일방통행하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진짜 CBT는 지시적이지 않습니다. 인지적 개입을 무턱대고 적용하지 않습니다. 치료 초기에는 내담자가 겪는 어려움이 무엇이고 어떤 기제로 반복되는 지를 치료자와 함께 이해해나갑니다. 그렇게 충분한 사례개념화를 내담자와 함께 협력적으로 만들어가고 합의된 상태에서 인지적 개입이 시작됩니다. 이때 논박과 매 회기 과제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내담자도 그 필요성을 인식한 다음에 협력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2. CBT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게 된다.


- 마찬가지로 인지적 개입을 하다 보면 말장난을 하는 것 같고, 좀처럼 내담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진짜 CBT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지양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서 활성화가 된 상태여야만이 인지적 개입이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연구들 기반해서 CBT는 현재 생활에서 발생하는 정서적인 어려움에 대해, 치료 장면에서 일부분 활성화된 상태에서 인지적 개입을 시도하기 때문에, 대체로 삼천포로 빠질 위험이 적습니다. 개입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방향으로 빠질 수도 있지만 치료자 역량에 따라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 관련하여 언급할 수 있는 CBT의 장점은 불필요한 정서적 어려움을 유발하거나 경험을 들추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금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 문제를 치료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혹은 지금은 전혀 우울이나 불안을 유발하지 않는 과거 상처를 들추어내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도 여전히 정서적/행동적 어려움을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의 경험도 다루게 됩니다.


3. CBT는 차갑다.


- 인지적 개입에서는 탐정처럼 내가 하는 생각에 실수는 없는지 점검하는 연습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 점들이 공감보다는 차가운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 하지만 진짜 CBT는 차갑지 않습니다. CBT 역시 감정을 중요시 하며 공감과 정서적 지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고 인지적 개입 내담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나아가서 인간에 대한 애정에 기반한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이를테면, 스스로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내담자가 있습니다. '나쁜 엄마'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스스로 설정한 '나쁘지 않은' 엄마의 기준은 누구도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기준이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또 자녀에 대해 과도한 책임으로 죄책감만을 가질 뿐, 자녀가 해낸 것에 대한 보람을 경험하지 않는 기울어진 저울도 점검합니다.

 

- 이 모든 과정에는 '인간은 좋고 나쁜 다양한 일을 한다', '각자 변화하는 과정 속에 놓여있다', '좋지 않은 점은 나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따뜻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치료자도 이런 전제에 대해서 마음 깊이 동의해야만이 제대로 된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 또한 최근 심리치료 연구에서는 치료적 접근 간의 효과 차이보다, 치료 접근 내의 치료자 간 효과 차이가 더 크다는 점이 반복 검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지행동치료, 정신분석, 대인관계치료 등등의 치료적 접근보다 치료자가 치료적 관계 형성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면, CBT에서도 단순히 인지적/행동적 개입을 능숙하게 해내느냐 이전에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 정확한 공감, 일치성과 같은 치료자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언급된 책과 논문

- Judith Beck, <인지행동치료 이론과 실제>, 하나의학사, 2017.

- Jacqueline Persons, <인지행동치료의 사례공식화 접근>, 학지사, 2015.

- David Burns,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박사의 충고: 필링 굿(feeling good)>, 문예출판사, 2009.

- 권정혜. (2018). 우리나라 임상심리학자들의 전문역량, 활동 현황 및 발전방향.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37, 1-3.



  안전하고 윤리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엄격한 수련 과정을 통해 공인된 전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CBT를 가장 많이 연구하고 시행하는 전문가 집단은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권정혜, 2018). CBT를 고려하신다면, 임상심리전문가(한국임상심리학회), 인지행동치료전문가(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의 자격을 확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무덥고 습한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그간 몇 가지 글감을 떠올리면서도 주말에 노트북 앞에 각 잡고 앉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묵호항에서 이른 여름휴가를 보내고, 또 온라인 학회와 클래식 공연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던 요가가 지겨워지고 러닝이 시원해지는 계절이어서, 러닝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듬어봅니다. 여러분도 나름대로의 휴가를 만끽하며 재충전하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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