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다양한 증상들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임상심리학자가 주로 하는 역할은 진단적 평가 그리고 심리상담까지 2가지 영역입니다. 그중에서도 진단적 평가는 환자분들의 증상을 가장 잘 대표하면서 포괄할 수 있는 진단을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환자분의 어려움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불편한 지점을 충분히 들어야 하면서도, 그 외의 다른 증상들은 없는지 어떤 자원을 갖추고 있는지 등등 다양한 영역을 모두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드리지 못해서 못내 아쉬운 환자분들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자살을 진지하게 고려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위기 개입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몇 가지 짧은 당부를 드리게 됩니다.
1. 자살을 진지하게 고려하다
심리학에서는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를 '자살과 관련된 행동과 연관되는 스스로 보고한 생각으로 자살하려는 현재 욕구와 계획을 포함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자살시도자들의 경우 이전에 수 주에서 수개월간 지속되는 자살사고를 보고하고 있으며(Anestis et al., 2014), 자살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내에 자살시도로 이어질 확률이 국가별로 15%–2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Turecki & Brent, 2016). 그렇기 때문에 자살사고의 여부와 심각도를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Rihmer, Z. (1996). The Couse of the Suicide Process 자살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최근까지 발전되어 왔지만, 제가 느끼기에 가장 직관적인 이론은 Rihmer의 자살의 경로 이론입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 상황들, 부정적 사고와 우울감은 자살 위험성을 높여주지만, 자살시도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밀접한 요인들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살행동의 시작은 지금까지 논의한 '자살사고'로 꼽고 있습니다.
2. 자살사고를 파악하는 방법
스스로가 혹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 인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치듯이 힘듦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단지 말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적인 관찰도 중요합니다.
자살과 관련된 심리적인 개념들 간의 관계성을 분석해보았을 때, 2개의 차원이 도출되었습니다(Holden & Kroner, 2003). 첫 번째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살에 대한 욕구, 자신과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생각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인 행동 경향성'으로 자살에 대한 준비, 이전 자살시도 등을 포함합니다.
올해 발표된 우리나라 연구에서도 자살사고가 동기(motivation)와 준비(preparation) 등 2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혀졌습니다(Choi et al., 2020).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살 위험이 느껴지는 경우에는 1) 자살에 대한 욕구가 높은지, 2) 현재 주변을 정리하거나 도구를 준비하지는 않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3. 자살 위험이 느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까요?
조언보다는 침묵을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지나갈 거다'와 같은 조언보다는 침묵을 견뎌봅시다. '어떤 점이 어떻게 힘든지'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습니다.
지금의 극단적인 생각도 '증상'
- 나도, 상대방도 알아야 할 점은 우울해질 때, 충동적이 될 때, 우리는 흔히 시야가 좁아집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지금의 어려움이 나의 전부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런 상태도 증상일 뿐이고 원래는 나와는 조금 다른 나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 지금 홍수처럼 몰려온 고통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내 감정과 상황은 모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불우한 상황이나 우울로부터 비롯된 죽음에 대한 결정은 조금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하고 싶습니다.
자살하려는 마음의 이면
- 자살을 고려하는 이유는 지금의 이 고통이 나를 너무 옭아매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죽음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서있기 때문에, 큰 슬픔이나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은' 것이지 죽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장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경우에는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
-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고 있습니다.
129번을 외워봅시다
- 보건복지부에서는 24시간 위기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29번을 외워두고 반복해서 말해주고 휴대전화에 저장해둘 수도 있습니다.
참고한 논문
- Anestis, M. D., Soberay, K. A., Gutierrez, P. M., Hernández, T. D., & Joiner, T. E. (2014). Reconsidering the link between impulsivity and suicidal behavi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18, 366-386.
- Choi, Y. H., Lee, E. H., Hwang, S.T., Hong, S. H., & Kim, J. H. (2020). Reliability and Validity of the Beck Scale for Suicide Ideation (BSS) in Korean Adult Participants.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39, 111-123.
- Holden, R. R., & Kroner, D. G. (2003). Differentiating suicidal motivations and manifestations in a forensic sample. Canadian Journal of Behavioural Science, 35, 35-44.
- Rihmer, Z. (1996). Strategies of suicide prevention: Focus on health care.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39, 83-91.
- Turecki, G., & Brent, D. A. (2016). Suicide and suicidal behaviour. Lancet, 387, 1227-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