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는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는데요, 이전 직장에 비해서 늘어난 자유 시간에 어리둥절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한 루틴은 바로 '논문 읽기'입니다. 당장 리뷰가 필요한 논문이 아니라, 스스로 궁금한 주제들에 대해서 읽고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오늘은 올해 2월에 발간된 따끈한 논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유서를 남기는 이들의 특징
-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최근 자살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라는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살 행동이 일어난 심리사회적 요인들을 알아낸다면 치명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나라에도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심리부검뿐만 아니라 사별 유가족들에 대한 관리를 진행하면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유서는 남겨진 이들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이기도 하면서 자살 행동을 이해하고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자살 위험성을 탐지하는 도구들은 공통적으로 '유서를 준비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에 실린 논문은 심리부검을 통해 유서를 남긴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의 심리사회적 요인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 유서를 남긴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스트레스 사건들(경제적 혹은 관계 위기), 신체적인 질병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유서를 남기지 않은 이들은 알코올 의존을 포함한 정신과적 질병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서는 대체로 "내적인 대화"로서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탓하기보다는 자살을 선택한 이유, 사과, 위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유서를 남긴 이들은 덜 충동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서 유리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 이러한 결과는 자살 행동을 나타낼 위험군의 심리사회적 특성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유서를 남긴 집단은 덜 충동적이고, 환경적 문제에 영향을 받고, 사회적인 관계에 관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살 예방 개입을 개발하거나 적용할 때에도, 구분되는 두 집단의 특징을 통해서 차별적인 개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살 위험이 높다고 판단될 때, 1) 환경적(관계, 돈, 신체) 문제가 두드러지는 경우에는 대인관계 자원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개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2) 좀 더 충동적인 특성이나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비롯해 자기조절 능력을 늘리는 개입을 고려해볼 수 있겠죠.
- 연구에서 특징적인 점은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aysis)'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분석 조건을 달리 시행했을 때에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는지를 추가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유서를 썼느냐 아니냐 와 더불어 (심도 있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썼느냐에 아니냐를 함께 추가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 Lang, A., Brieger, P., Menzel, S., & Hamann, J. Differences between suicide note leavers and other suicides: A German psychological autopsy study.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137, 17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