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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Jun 23. 2021

사회불안이 심하면 회피성 성격장애일까?

심리학자와 최신 연구 읽기 - 7

Photo by Enza Brunero on Unsplash


  지난 시간("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꺼려져요")에는 회피성 성격장애가 무엇인지, 어떤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자신에게 큰 결함이 있다고 느끼고 대인관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담자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발표, 조별 과제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심한 불안에 압도되어 일을 망치기도, 아예 그 상황을 회피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떨까요? 사실 이 경우는 사회공포증(사회불안장애)의 사례에 가까운데요, 어떤 면에서 우리가 살펴본 회피성 성격장애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회피성 성격장애는 사회공포증과 구분될 수 있을까요? 구분된다면 어떤 점이 다를까요?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회피성 성격장애와 사회공포증의 차이

  2018년 1월 발간된 Comprehensive Psychiatry에는 Avoidant personality disorder and social phobia: Does mindreading make the difference? 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 역시 회피성 성격 진단이 사회공포증과 구분되는 정보를 제공하는지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 질문은 성격장애가 1) 스펙트럼 상에서 더 심각한 수준이다(양적인 차이만 있다), 2) 질적으로 구분되는 특성이다(질적인 차이가 있다)에 대한 논쟁이기도 합니다.


1) 먼저 양적인 차이만 있다, 즉 회피성 성격과 사회공포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입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회피성 성격과 사회공포증이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잦고 동반되었을 때 증상의 심각도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두 집단의 사회경제적 지표와 역학 조사의 결과가 비슷했다고 합니다.


2) 반면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입장에서는, 성격 병리의 측면에서 정체성, 정서적 회피, 대인관계 문제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자신의 정체감이 뚜렷하지 않고 애착 관계를 두려워하며 피하는 대인관계 패턴을 나타낸다는 거죠. 실제 연구에서도 내향성과 사회불안 수준은 두 집단이 비슷했지만, 대인관계 어려움은 회피성 성격에서 더 크게 보고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사회공포증이 동반되지 않은 회피성 성격 집단이 오히려 전반적인 성격 기능의 문제가 뚜렷했다고 합니다. 두 진단이 동반되는 경우에 심각도가 더 클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던 거죠.


  이 연구팀에서는 이 두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 성격 병리에서 중요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능력은 메타인지적 능력 metacognitive capacity, 혹은 정신화 mentalization라고도 하는데요. 이 메타인지적 능력은 통합된 자아상을 발달시키고, 인생의 목적을 인식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관적인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대인관계에서 공감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 성격 특성 중에서 회피성 성격의 경우에는 특히 자신과 타인의 내적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지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감정을 인식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나누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혀지기도 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회피성 성격장애와 사회공포증이 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즉 회피성 성격은 사회공포증과 다르고 각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겁니다. 먼저 증상의 측면에서, 회피성 성격 집단이 사회공포증 집단에 비해 증상이 더욱 심각하고 손상의 수준이 전반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메타인지적 능력과 대인관계 기능에 있어서도 회피성 성격의 손상이 더 컸습니다.


  특이한 점은, 회피성 성격장애에 사회공포증이 동반되느냐에 따라 메타인지적 능력이 달랐는데요. 회피성 성격과 사회공포증이 동반될 때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회공포증O+회피성 성격장애 집단이 사회공포증X+회피성 성격장애 집단보다 메타인지적 능력이 더 높았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대해 사회공포증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사회공포증상을 호소하는 것도 사회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자각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죠. 마치 심리치료의 과도기에 자신의 상태와 어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우울과 불안이 악화되기도 하는 것처럼, 사회공포증을 호소하는 집단이 오히려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인식 능력을 반증하는, 상대적으로 심리적 자원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연구는 성격 병리의 특성 중에서 메타인지적 능력/정신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회피성 성격과 사회공포증이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스스로를 타인과 다른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고, 대인관계를 원하면서도 거부하게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심리치료의 측면에서는 이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소외감을 이해하고 치료자가 현재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개방하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후기


 지난 글을 쓰고 나서 한동안 '회피성 성격'과 같은 분류가 과연 필요할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진단'과 같은 분류체계는 원인, 예후, 치료방법 등에 대해 대략적이고 밋밋한 그림을 그려주지만 낙인 문제, 개인 삶의 복잡성을 단순화시킨다는 문제 등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은 순수한 서사시와 다를 게 없"듯이, 개개인의 삶은 다른 모양으로 살아냅니다.


  그럼에도 대상자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논문을 쓰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상담 경험이나 슈퍼비전이 줄 수 없는 보다 정제되고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점일 겁니다. 상담자의 경험, 슈퍼비전은 밀착되고 풍부한 직관을 주지만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담자와 만나기 위한 툴이 다양할수록 이해의 폭이 깊고 넓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회피성 성격을 치료하는 최신 흐름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회피성 성격'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 Pellecchia, G., Moroni, F., Colle, L., Semerari, A., Carcione, A., Fera, T., ... & Procacci, M. (2018). Avoidant personality disorder and social phobia: Does mindreading make the difference?. Comprehensive Psychiatry, 80, 16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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