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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Aug 22. 2021

소설가일지도 몰라, 심리치료사

함께 읽는 즐거움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휴가를 시작하면서 몇 권의 책을 빌렸어요. 공교롭게도 두 번째 장마 기간을 앞두고 있어서 책 읽는 시간이 꼭 필요하겠다 싶었거든요. 여러 권의 책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지면에 썼던 짧은 글을 모은 [잡문집]으로 시작했어요. 하루키의 소설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의 에세이는 잘 맞았거든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자기란 무엇인가 -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볼게요.


소설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로 늘 이런 대답을 한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라고.


  이 구절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일이 어쩌면 심리치료 therapist의 일과 비슷하겠다 싶었어요. 우리 심리치료자도 내담자로부터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려야만 하잖아요. 계속 읽어볼까요.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가령 아마미의 검정 토끼 관찰을 통해 볼링공을 묘사하는 경우라도, 그렇다면 판단은 왜 조금만 내릴까?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폭력적이라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건네주는 데 있다.


  다시 한번 소설가란 심리치료일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심리치료도 많은 것을 올바르게 관찰해야만 내담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내담자의 표정, 침묵, 어투를 비롯한 비언어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그가 언어로 표현하는 자신만의 맥락을 충분히 관찰해야 해요.


  그러면서도 '판단'은 가능한 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우리가 겪는 삶의 부대낌은 많은 경우 나와 타인의 판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잖아요. 나는 절대 이겨내지 못할 거야,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같은 언어적인 문장들 말이에요. 심리치료와 만나는 시간만큼은 판단은 잠시 걷어두고 자유로워지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대신에 심리치료는 좁고 단절된 내담자의 이야기가 일관되고 통합될 수 있도록 관찰하고 질문합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물을뿐 어떤 가능성을 힘주어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내담자는 뒤죽박죽이거나 회색빛이었거나 모서리가 닳아있는 이야기를 바꾸어나갑니다. 치료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요.



잘 아시겠지만, 소설가가(귀찮아서 혹은 단순히 자기 과시를 위해) 그 권리를 독자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매사를 이래저래 판단하기 시작하면, 소설은 일단 따분해진다. 깊이가 사라지고 어휘가 자연스러운 빛을 잃어 이야기가 제대로 옴짝하지 못한다.


  심리치료란 내담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작업도, 내담자에게 충고하거나 조언하는 일도 아닙니다. 소설가가 독자에게 권리를 넘기듯이 심리치료사도 내담자에게 권리를 넘겨야 합니다. 내담자의 어려움과 맥락을 스스로 소화할 수 있도록 곁에서 밀어주고 당겨줄 뿐입니다. 내담자의 맥락을 섬세하게 펼쳐보면 내담자 스스로 일관되고 통합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소설가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지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결론을 준비하기보다는 그저 정성껏 계속해서 가설을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가설들을 마치 잠든 고양이를 안아들 들 때처럼, 살그머니 들어 올려 (나는 '가설'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늘 곤히 자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따스하고 보드랍고 포슬포슬한 의식이 없는 고양이) 이야기라는 아담한 광장 한가운데에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린다. 얼마나 유효하고 올바르게 고양이=가설을 가려내어, 얼마나 자연스럽고 솜씨 좋게 쌓을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역량이 된다.


  하루키는 마지막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소설가가 좋은 이야기를 위해 결론을 준비하지 않듯이 심리치료는 내담자의 이야기에 결론을 지어주지 않습니다. 충고, 조언, 판단과 같은 닫힌 결론을 준비하지도 않습니다. 내담자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가능성을 묻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가 반쪽이거나, 무채색이기만 하거나, 귀퉁이가 잘려있지는 않은지요. 얼마나 유효하고 정교하게 가설을 가려내어, 얼마나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쌓아갈 수 있는가. 숱한 가설을 통해 따스하고 보드랍고 포슬포슬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심리치료사의 역량이면서도 내담자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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