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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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미루고 미뤘던 논문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1) 바이올린에 대한 심리학 연구, 2) 회피성 성격장애의 최신 치료흐름, 3) 한국상담심리학회 가을학술대회 발표 (자살위험 평가), 4) 메리 파이퍼와 타라 브랙의 책 등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뻑뻑해진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써온 글을 리뷰하는 모임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 와중에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과정접근>을 읽기 시작했어요. 상담관계를 활용하는 대인과정접근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어서 많은 상담자들에게 영감이 되는 책이에요. 2년 전 쯤에 혼자서 읽으면서 상담에서 겪고 있던 상담자로서의 어려움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응원 받았고, 또 실제 상담 장면으로 돌아갔을 때 치료적인 반응이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동기들과 어떤 전공책을 함께 읽을지 리스트를 꾸릴 때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다시 읽는다면 상담자의 태도를 단단히 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실용적 정신역동치료>를 마칠 즈음 <대인과정접근>을 매일 5페이지씩 함께 읽고 매주 소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럼 함께 읽기 시작해볼까요.
1주차. pp. 3-42.
내담자의 핵심 문제와 사례개념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상담을 따뜻한 목욕탕에서 어슬렁거리기보다는 시원하고 수정처럼 맑은 계곡에서 수영하는 것으로 시각화해야 한다. 온화함은 쉽지만 명료함은 어렵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 단지 따뜻하기만 해서는 치료적이기에 부족하다는 것이고, 정확한 개념화와 구체적인 공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해. 인간중심치료가 말하는 3가지 요인이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CBT나 게슈탈트 등 여타 치료들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고.
분리개별화 문제는 결국 인지행동치료의 이분법적 사고와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로웠어. 이상화된 부모상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능적이지만, 현실은 왜곡되고 자아는 분열되는 대가가 크다고 했어.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이상화된 부모에 맞춰, 자기비난, 통제가능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이 이해가 됐어.
2주차. pp. 42-67.
이번주는 작업동맹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먼저 대인과정 접근의 목표가 내담자들의 현재 어려움을 다룰 뿐 아니라, 효능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인상적이었어. 비슷한듯 다른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다고, 어렵지만 대처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이전의 패턴을 반복하기보다는 더 넓은 선택지들을 고려하고 유연해질 수 있겠지. CBT에서 말하는 '스스로 치료자가 된다'는 목표와도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CBT는 생각과 감정을 다룰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목표를 향해 간다면 대인과정 접근은 자신의 반복되는 관계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아.
그 목표를 위해서는 협력적인 치료관계에 기반한 작업동맹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협력적이지 않다면 내담자는 수동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효능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야. 치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그건 치료자를 잘 만났기 때문'이 될테니까. 이런 접근 역시 CBT나 동기강화면담에서 취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느껴졌어
신뢰로운 작업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치료자는 적극적이면서도 비지시적으로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내가 이해하기로는, 내담자에게 호기심어린 태도로 구체적인 공감을 하는 것이 적극적이라면, 조언이나 지시을 요구하는 내담자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것이 비지시적인 게 아닐까 싶어.
3주차. pp. 58-82.
상담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침이나 저항은 보통 미묘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상담자에게도 부담이어서,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기 쉽다고 느껴. 과정적 접근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탐색함으로써 내담자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가 깊어지고 작업동맹이 형성되는 기회라고 개념화하고 있어. 이 개념화가 불편한 무엇을 언급하는 위험을 감당할만하고 필요한 것으로 느끼게 했어. 무엇이 털어놓기가 꺼리게 하는지, 무엇이 지금 불편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내담자의 지속되는 어려움의 기제와 관련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구나 싶고. 이걸 의식적으로 떠올리면 상담 과정의 불확실성을 견디는 게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어.
공감적 이해가 내담자에게 안전감을 느끼게 하고 고통스러운 감정과 기억을 탐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도 느꼈어. 공감적 이해는 어떤 면에서 경험을 명료화하는 과정이고, 내담자는 점차 감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이해했어. 상담자는 내담자의 경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궁금해하며 내담자를 상담과정으로 초대해야겠지.
상담이란 결국 내담자의 생각과 감정, 태도에 흐르는 오래된 패턴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전달하는 과정인 것 같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서 내담자가 자신의 증상이나 어려움이 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일어난 무엇이라는 걸 깨닫고, 좀 더 넓은 관점과 유연한 태도로 새로운 반응을 연습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일관성 있는 인생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최근의 정신역동치료에서도 결국 '일관된 내러티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치료목표라고 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지점 같았어. 과거의 관계경험에 고착되어 단절되거나 단편적으로 구성된 내러티브가 아니라, 그때의 나에서부터 지금의 나까지가 통합되어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느껴.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네!
4주차. pp. 83-107.
이 챕터의 제목 ("작업동맹 형성하기") 으로 돌아가보면 치료관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언급(과정언급)이란 결국 치료동맹을 형성하고, 균열들을 회복해서 치료동맹을 돈독하게해주는 상호작용 방식이 아닐까 싶어. 그 치료동맹을 토대로 이전과는 다르게 보살펴지고 이해받는 누군가가 있기에 자신의 내적인 경험을 긍정하고 변화를 감행하는 자기효능감이 촉진된다고 느껴.
대인과정접근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이해가 됐어. 문제가 되는 반복되는 관계패턴, 과거에는 적응적이었지만 현재는 역기능적인 신념, 정서적 반응의 공통된 주제. 이 3가지는 사실 내담자의 어려움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어. 대상관계나 정신역동이 관계패턴을, 인지행동이 신념을, 게슈탈트가 정서적 반응에 개입의 강조점을 두고 있지만 결국 모든 치료접근에서 3영역을 포괄하여 개념화하다고 느끼거든.
대인과정언급은 관계패턴을 교정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작은 실험실이기도 하지만, 치료관계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교착이나 균열상태에서 특히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어.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교착이나 균열 자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해서, 바깥에서의 관계경험과 다른 진솔한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교착과 균열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치료동맹을 오히려 돈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야. 책에서는 치료자로서 이를 직접적으로 다뤄서 얻어지는 치료적 이익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어서 도움이 됐어.
자기개방과 자기관여를 구분해서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내담자의 표현에 대한 상담자의 반응인 자기관여는 치료자가 상호작용에 온전히 함께하고 있음을 전달하면서도 논의의 초점을 내담자에게 유지할 수 있기에 유용하겠구나 싶어. 그에 반해 치료자 자신에 대한 자기개방은 논의의 초점을 흩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순간에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겠지.
그러면서도 과정언급이 효과적이지 못한 두가지 경우를 통해서, 과정언급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 특히 과정언급은 진솔하게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나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데, 만약 상담자가 거리를 두거나 판단적인 과정언급을 한다면, 내담자는 치료실 밖에서의 관계경험처럼 이중적인 메세지를 받으면서 문제적인 관계패턴을 반복하게 된다고 이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