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有無)

Chapter 1 - 맘스테이션

by 구십이년생

아침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늘은 잿빛과 남빛이 뒤섞여, 낮인데도 저녁 같은 빛을 띠고 있었고 공기 속에는 비가 올 듯한 습기와 차가움이 섞여 있었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 데서 젖은 흙냄새가 스쳤다.


단지 정문 앞, 회차 공간 한가운데 맘스테이션이 서 있었다. 어떤 아이는 바닥의 금을 따라 폴짝폴짝 뛰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작은 가방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서로 귓속말을 나누며 웃었다. 가끔은 주머니 속 작은 장난감이나 간식을 꺼내 친구에게 자랑하듯 내밀기도 했다.


“점점 쌀쌀해지네요.”

“그러게요, 긴팔을 꺼내 입어야겠어요.”


부모들 사이에 짧은 말들이 오갔다. 멀리서 유치원 차량이 정문을 넘어 모습을 드러내자, 부모들은 아이들을 불렀다.


“차 왔다.”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차량이 회차 공간으로 다가오자 부모들은 손을 내밀어 아이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작은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고, 차 옆에 다가가자 문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차례차례 한 명씩 올라탄 아이들을, 부모들은 차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작은 손이 유리창에 닿았다가, 차가 움직이자 공중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그 손짓이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아무도 제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엔진 소리가 멀어지고,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차량이 사라지자 손가락을 한 번 쥐었다 폈다.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었던 듯 손바닥이 잠깐 따뜻해졌다 식었다.


그녀도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맘스테이션 옆 단지 내 어린이집 문 앞에는 킥보드들이 빗물 없이 반짝였다. 밤새 맺힌 습기가 바퀴를 타고 흘렀다. 바람이 스치자 킥보드 하나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가 멈췄다. 그 미묘한 움직임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았다.


잠깐, 손끝이 저릿했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던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오래전 같은, 하지만 분명 어제도 본 듯한 감각. 그녀는 무심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손바닥은 한순간 따뜻했다가 금세 식었다.


단지 안의 가로수를 따라 걷다가, 그녀는 정문을 나섰다. 정문 밖 도로변에는 출근 차량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 몇이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속에 섞여, 그녀도 도로를 건넜다.


맞은편 길목에는 작은 마트가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며 따뜻한 공기가 스쳤다. 계산대 쪽에서 바코드 인식음이 짧게 울리고,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문턱을 넘지 않고 잠시 그 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걸었다. 꼭 사야 하는 물건이 잇는 듯이 작은 마트를 쳐다보았지만 사야 할 물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 속에서 접힌 종이를 한 번 더 만졌다. 오래 접혔다 펴진 종이는 모서리가 부드럽게 닳아 있었다.


코너를 돌아서자, 작고 아담한 꽃가게 간판이 보였다.

유리문은 반쯤 닦여 있었고, 안쪽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선줄이 흐린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낮인데도 저녁 같은 빛이 길게 이어질 것처럼, 하늘은 여전히 어둑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