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有無)

Chapter 4 — 집 안의 침묵

by 구십이년생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공기가 느리게 밀려 나왔다.

집 안은 정리된 듯 고요했다. 어쩐지 빈집 같은 서늘함이 감돌았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조용히 들어서며 불을 켰다. 전등 불빛이 켜지자마자 벽과 바닥 위로 얇게 퍼졌지만, 그 안이 완전히 환해지지는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자동처럼 냄비와 팬을 꺼냈다. 반찬 몇 가지를 놓고, 압력 밥솥에 불이 켰다. 손은 자연스럽게 달걀을 풀고, 팬 위에 부었다. 계란이 익으며 퍼지는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계란을 돌려가며 말았다. 그러다 문득 손이 멈췄다.

“계란말이를 왜 하고 있지?”


그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 멍해졌다.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익숙한 냄새와 동작이 분명히 무언가를 불러와야 하는데, 그 끝에는 막혀버린 공백만이 남아 있었다.


찌릿한 통증이 머리 한쪽을 스쳤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이마를 눌렀다. 계란말이는 팬 위에서 조금 타 들어갔고,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했다.


저녁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계란말이가 놓였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나 왔어.”

“응, 왔어. 오늘도 고생했어.”

남편은 식탁을 힐끔 보며 잠시 망설였다.

“오늘… 무슨 일 없었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봤다.

“아무 일 없었지. 무슨 일? 왜?”

“아니야”

짧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남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남편은 괜히 손을 움켜쥐었다.


잠시 뒤 남편이 옷을 갈아입고 와 식탁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속으로 *왜 이렇게 남편이 조용하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냥 지나쳤다.


두 사람은 오래 침묵하며 밥을 뜨는 소리만 냈다. 숟가락 소리가 고요 속에서 오래 맴돌던 끝에, 남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할까?”

그녀는 손을 멈추고 남편을 바라봤다.

“왜?”


남편은 시선을 피한 채, 밥 위에 반찬만 천천히 올리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낮고 무겁게 말을 이었다.

“여기 있으면… 힘들어 보여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나?”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힘들지. 근데 널 보면… 더 무너질까 봐 겁나.”

목소리는 조금 떨렸고, 오래 눌러 담은 감정이 그 틈에서 새어 나왔다.


그녀는 이상하게 느꼈다. 남편의 말은 단순한 걱정 같으면서도, 어쩐지 그녀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두려움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마저 사라질까 봐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사람처럼.


“무슨 소리야 나는 괜찮아.”


식탁 위의 계란말이는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젓가락을 잠시 멈추고,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잠시 남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남편의 이사 가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기분이 가슴에 스쳤다. 그것은 슬픔 같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 같기도 했다.


“이사… 어떻게 생각해?”

“…”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남편은 애써 숟가락을 들었다. 입가에는 작은 웃음을 걸었지만, 눈빛에는 오래된 그늘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침묵 끝에, 그녀는 무심코 혼잣말처럼 흘렸다.

“근데… 왜 이렇게 집이 조용하지.”


남편의 손이 순간 멈췄다. 그의 표정에는 미세한 당혹감이 스쳐갔다. 그러나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고요만이 다시 식탁 위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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