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有無)

Chapter 6 — 남편의 기억

by 구십이년생

밤은 깊었고, 그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누운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숨결마저도 낯설게 느껴졌다. 쓸쓸함은 다시 가슴에 파고들었고, 결국 그의 기억은 억눌렀던 장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세상은 유난히 맑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하늘은 옅은 푸른빛으로 번져 있었고, 구름은 가볍게 흩어져 있었다. 햇살은 투명하게 도로 위에 내려앉아,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듯 빛나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아이의 웃음소리는 한층 더 맑게 퍼졌다.


“출발했어?”

휴대전화 너머로 그의 목소리는 미안한듯 서두르는 목소리였다.

“응, 이제 막 고속도로 탔어.”

아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피곤한 기색이 살짝 묻어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분명 밝았다.


옆자리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빠! 가는 중이야! 나 먼저 케이크 먹어도 돼?”

햇살 속에서 튀어 오르는 듯한 투명한 음성이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려. 저녁에 아빠 도착하면 같이 먹자.”

“알았어! 엄마 엄마 가면… ”

아이의 신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종소리처럼 맑게 번졌다.


그는 짧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안해. 오늘 같이 못 가서…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꼭 같이 출발하려고 했는데.”

“괜찮아. 오늘은 그냥 우리끼리 놀고 있을게. 당신은 일 끝나면 바로 와.”

“응. 조심히 운전하고, 좀 있다 연락할게.”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빛나고 있었다. 옅은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느리게 흘렀고, 햇살은 투명한 유리창을 타고 아이의 웃음과 함께 차 안 가득 번졌다. 도로나 나무, 지나가는 표지판까지도 황금빛 가장자리를 두른 듯 반짝였고, 그 속에서 아이의 재잘거림은 바람결에 부서지는 종소리처럼 맑게 흩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환하고, 세상은 무너질 줄 모르는 듯 평온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찬란했던 날은 무너졌다.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 화면 위에 떴다.

그는 회의 중 계속 오는 전화로 밖으로 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경찰서입니다. 56주 6666 차량 차주분의 남편 맞으십니까? 사고가 나서요… ”


그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졌다. 심장이 요동쳤고, 손에 쥔 휴대전화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경찰과 무슨말을 하며 어떻게 통화를 마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곧장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 끊고 다시 걸어도, 같은 신호음만 메마른 바람처럼 울릴 뿐이었다.


차 키를 움켜쥔 그는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주차장 특유의 냄새와 메아리처럼 울리는 발걸음 소리 속에서, 그의 손은 심하게 떨렸다. 시동을 걸기도 전에, 키를 꼭 쥔 손바닥에 식은땀이 번져났다. 핸들을 잡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지하에서 빠져나와 도로변에 섰다.손을 들어 택시를 불러 세우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는 그의 귀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화면 속 이름은 눌러도 눌러도 같은 신호음만 반복되었다.


택시에 올라타며 간신히 말했다.

“OO대병원으로… 빨리 가주세요.”


창밖 풍경은 여전히 낮이었지만, 햇살은 사라지고 먹구름이 겹겹이 드리워져 있었다.

회색빛 하늘은 도로를 짓누르듯 내려앉아 있었고, 그 빛은 택시 유리창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시는 분명 같은 여름의 오후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이미 해가 기운 듯 붉은 기운이 스러지고, 먹구름이 겹겹이 깔린 저녁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회색과 남빛이 섞인 하늘은 무겁게 늘어져, 마치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흔들렸다. 그 어둠은 창밖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서히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심장에서 번져 나와 세상을 덮어버리는 듯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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