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有無)

Chapter 5 — 남편의 밤

by 구십이년생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지만, 남편의 눈은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방 안은 고요했으나, 그 고요는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남편의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옆에 누운 그녀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숨결마저도 남편에게는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쓸쓸함이 서서히 스며들어 가슴을 차갑게 적셨다. 남편의 머릿속은 아침과 저녁의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곧장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씻고, 머리를 묶은 뒤,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침대에만 웅크려 있던 사람이었다. 깊은 수렁처럼 가라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 선명했는데, 오늘은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순간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 가?”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어이없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꽃집에 가야지”


그 말은 너무도 평범하게 들렸지만, 남편의 가슴 한쪽을 묘하게 흔들었다. 괜찮아진 걸까.


그러다 그녀는 현관으로 가는 대신, 방 앞에서 멈췄다. 손잡이를 잡을 듯 망설이더니, 마치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사람처럼 서성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이 이미 정리해 버린 방이었다. 그 방은 그냥 텅 빈 공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혼잣말을 흘렸다.

“… 왜 아무것도 없지.”


그녀를 뒤에서 지켜보던 남편의 목구멍이 굳어졌다. 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왔다. 잠시 이마를 누르고 멈춰 선 그녀의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남겼다.


출근길 내내, 남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눈앞에 겹쳐졌다. 서둘러 머리를 묶고, 옷을 챙기고,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기던 모습.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가, 갑자기 그렇게 달라진 게 믿기지 않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도 손은 키보드 위에서 자주 멈췄다.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도, 문득 아침의 장면이 다시 떠올라 눈앞을 가렸다. 그녀가 아이 방 앞에 서서 중얼거리던 순간,

“… 왜 아무것도 없지.”

그 말이 귓속에서 반복되었다.


남편은 서류를 넘기다 말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마음 한쪽에서 불길한 의심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괜히 예민한 걸까. 정말로 괜찮아진 걸까. 수많은 의문이 한꺼번에 몰려와, 남편의 머릿속은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점심시간에도 그는 밥을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동료의 물음에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도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얼굴만 떠올랐다.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였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스며 있었다.


오후가 되어도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고, 전화벨 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남편은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퇴근까지는 한참이 남아 있었지만,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왜 갑자기 그러는 걸까…”

그는 낮게 혼잣말을 흘렸다.


남편의 하루는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과 불안 속에서 흘러갔다.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리고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식탁 위에는 밥과 국, 그리고 계란말이가 놓여 있었고 남편은 그 광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사고 이후, 아내가 이렇게 식탁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었다. 늘 이불속에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저녁상을 차려둔 것이다.


계란말이가 특히 눈에 걸렸다. 젓가락조차 잘 대지 않던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노랗게 식어가는 계란말이가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그녀는 멍한 얼굴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 눈빛은 쓸쓸했고, 그 쓸쓸함은 집안 가득히 퍼졌다.


남편은 숟가락을 들고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왜 하필 계란말이지. 혹시, 진짜 잊어버린 건 아닐까.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마음은 더 깊게 흔들렸다.


“왜 이렇게 집이 조용하지?”


그녀가 무심코 흘린 말이 식탁 위에 가라앉았다.

남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숟가락은 밥 위에 닿지도 못한 채, 그의 눈빛만이 아내에게 고정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낯설 만큼 고요했다. 슬픔을 잊은 사람처럼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남편의 가슴을 깊게 흔들었다.


놀람이 먼저 밀려왔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흘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곧 쓸쓸함과 슬픔이 뒤따라왔다. 그녀의 눈빛 어딘가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사라진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남편은 그제야 확신했다. 그녀는 잊은 게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연민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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