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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미 Nov 04. 2024

교육의 틀 속에서 사라진 자아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 개인의 자연적 본성이 억압당하는 교육 시스템의 냉혹한 현실을 다루며, 독자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 서평에서는

교육을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한스라는 어린 아이가 죽음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되짚어보고 싶다. 

교육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그를 무너지게 했는지 탐구해보고 싶다.


읽게 된 이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초기 대표 작품인 수레바퀴 아래서와 후기 대표 작품인 싯타르타를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손현주 작가님의 '가짜 모범생'이란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기 직전까지 읽던 책이 바로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연관 도서와 드라마

- 가짜 모범생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1화 '어린이 해방꾼'


나의 서평은 첫 번째 질문에서 시작된다.

물방앗간에서는 둥근 톱니바퀴가 신음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강물은 두 군데의 둑에서 시원하면서도 나지막하게 흘러나와 한 군데로 모여들었다.  18쪽    

나는 두 군데의 둑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한 군데로 모여든다는 표현에서 질문이 들었다.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을까?


한스의 내면아이와 이별

학교에서 신경쇠약 증상으로 집으로 돌아온 한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어린 시절 친구였던 아우구스트와도 마지막으로 작별했다. 신학교에서의 유일한 친구 헤르만 하일너가 떠난 후, 한스는 마치 문둥병 환자처럼 학생들과 교사들의 경멸 속에 남겨졌다. 그는 과거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부적합한 인물이 되었다.


어린 시절 아우구스트와 물레바퀴를 만들고 토끼 집을 고치며 보냈던 시절은, 한스의 내면아이의 건강하고 창조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스는 학업에 집중하면서 이런 시절과 점점 멀어졌다. 이는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나타나며, 내면아이와의 강제적 이별을 상징한다.


페르소나의 강화와 자아의 분열

헤세는 교육 시스템이 한스에게 완벽한 페르소나를 강요한다고 묘사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기본 원칙에 따라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구절은 페르소나 형성의 강제성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한스의 자아는 점점 분열되어 갔다. “학교에서도 그는 눈앞에 놓여 있는 공부 대신에 이미 했거나 아니면 나중에 해야 할 공부를 늘상 생각하고 있었다”는 구절은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 채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 분열된 의식을 보여준다.


그림자의 출현과 억압된 본능

하일너는 한스의 억압된 그림자(Shadow)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탈주자 하일너는 자신의 의지가 그 어떤 지시나 금지령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교장 선생에게 보여준 것”이라는 구절은, 하일너가 한스의 자유와 반항의 욕구를 대표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하일너와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한스가 학교에서 더욱 낯섦을 느끼는 것은, 억압된 그림자와의 만남이 가져오는 필연적 결과이다.


개성화 과정의 실패와 자아의 죽음

융의 심리학에서 건강한 성장은 내면아이, 페르소나, 그림자 등 다양한 원형들의 통합을 통한 개성화 과정이다. 하지만 한스의 경우, 이 과정은 실패로 끝난다. “어느 누구도 야윈 소년의 얼굴에 비치는 당혹스러운 미소 뒤로 꺼져가는 한 영혼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절망에 싸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은 자아 통합에 실패한 한스의 죽음을 암시한다.


두 강물의 상징적 의미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두 강물이 한 군데로 모여드는” 이미지는 의식과 무의식, 페르소나와 내면아이의 조화로운 통합을 상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통합은 실패하고, 사회화된 페르소나가 자연적 내면아이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대적 함의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단순한 교육 비판을 넘어, 개인의 본성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괴리를 조명하며 현대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선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청년의 발효가 시작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기에 조숙한 소년의 기질에서 나타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구절은 교육이 개인의 자연스러운 개성화 과정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억압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과 중심주의에 억눌린 많은 학생들의 내면아이를 상기시킨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자아와 내면아이의 비극적 분리를 그린 심리적 알레고리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자아를 잃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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