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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am Feb 12. 2023

에드바르 뭉크의 트라우마

뭉크는 왜 '병든 아이' 시리즈를 그렸을까?

담배를 든 자화상, 1895


이 작품은 에두바르 뭉크의 자화상입니다. 뭉크의 다른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에 비해

자신을 그린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조명을 비춘 듯 흐릿하면서도 담뱃불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뭉크의 작품들 중 제가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젊은 시절의 에드바르 뭉크의 모습은 잘 생긴 일반적인 청년으로 보입니다.



시계와 침대 사이에 있는 자화상, 1940-1943


뭉크가 죽기 얼마 전에 그린 이 작품도 아까 작품처럼 자신의 초상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그의 마지막 주요 작품 중 하나로서 젊은 시절의 초상화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자신을 불행하고 늙어가는 노인으로 묘사했습니다.



뭉크의 어릴 적 가족사진 (사진 오른쪽 엄마 옆에 서있는 아들이 뭉크)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입니다.

마치 청교도인처럼 엄격하고 냉정하며 병적으로 예민했던 아버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병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그를 짓누르게 될 가혹한 운명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가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9년 후에는 형제들 중 가장 친하고 의지했던 누나 역시 엄마와 같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엄격하면서도 병적으로 예민했던 아버지는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뭉크가 파리에서 살았던 1889년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의 남동생도 1895년 서른  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뭉크 또한 이러한 병약한 가족력으로 늘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예술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반대로 1879년 오슬로에 있는 기술대학에 들어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잦은 병치레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자 할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1881년 노르웨이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스 예거 (Hans Jaeger)가 이끄는 극단적 자유주의자 그룹인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아'에 합류하게 됩니다. 뭉크는 한스 예거에게서 영감을 받아 어둡고 고뇌에 찬 자신의 삶과 어릴 적부터 느꼈던 자신의 어두운 심리적 경험,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작품에 반영하게 됩니다. 



불안 , 1894


뭉크는 1885년에 처음으로 파리를 여행했으며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둘러보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반 고흐나 툴루즈, 폴 고갱의 작품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들의 작품은 뭉크에게 그림의 목적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후 그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며 작품 속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투영시키게 됩니다. 


나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았던 것을 그린다


1890년에 뭉크가 직접 한 말입니다. 

5세 때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뒤 같은 병으로 의지하던 누나까지 잃자 어린 시절의 아픔이

결국 트라우마로 부각되어 자신이 그리는 작품 속에 표현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당시 유행했던 미술적 계보인 '사실주의'와 종종 비교하게 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삶과 그 모습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뭉크의 작품을 사실주의와 비슷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뭉크의 작품은 화가의 사적인 경험, 즉 개인사로부터 파생된 모티브가 다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주의는 실제의 나와 이웃들의 삶을 직접 보고 따라 그린 것이라면 뭉크의 작품은 작품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 대한 관찰 대신 화가 개인의 추억과 기억에 기반한 재현이므로 화가의 느낌대로 확장해석되거나 강조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에두바르 뭉크의 <병든 아이 시리즈>


뭉크가 시리즈로 내놓은 작품 중 '뭉크'라는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바로 '병든 아이'입니다.

위 사진 속 작품들은 전부 같은 주제인 '병든 아이'를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채색한 서로 다른 작품들입니다. 마치 동시대의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처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른 기법으로 작품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뭉크는 왜 하고 많은 주제들 중에 '병든 아이'라는 작품을 연속적으로 그렸던 것일까요? 


뭉크는 누나의 작품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정적,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들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칠고 암울한 묘사 방식에 대해 경악했지만 뭉크는 이 작품들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1889년 뭉크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슬로에서 개인전을 열어 110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같은 해에 그는 노르웨이 국비 장학금을 받게 되고 파리로 유학도 가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나 뜨개질하는 여인이 있는 실내 정경을 그려서는 안 된다. 숨을 쉬고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존재를 그려야 한다


내밀한 인간의 경험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던 뭉크는 프랑스와 노르웨이를 오가며 점차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의 그림은 거칠고 불안한 선과 함께 매우 종합적이고 양식화된 드로잉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종종 강하게 대조되는 비자연적이고 강렬한 색채를 이용했습니다. 이러한 색채는 극적인 효과를 주며 보는 이의 반응을 상당히 강하게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Death in the Sickroom, 1893-1895


아픈 사람을 주인공으로 왼쪽과 중앙의 작품은 신기하게도 작품의 시선이 주인공인 '아픈 사람'에게 간 것이 아니라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가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을 슬픈 표정으로 응시하듯 바라보며 서있는 여인에게 뭉크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자신의 끝없는 슬픔을 관객에게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절규 , 1893


Madonna, 1894


어린 시절의 슬픈 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에두바르 뭉크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부각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과 그의 삶이며 우리는 죽어버린 자연이 아니라 바로 그 삶을 보여줘야 한다고 뭉크는 주장했습니다. 생애에 걸쳐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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