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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am Dec 23. 2022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왜 크리스마스만 되면 사람들은 '호두까기 인형'을 보는 걸까?

Dancer Taking a Bow (The Prima Ballerina),  Edgar Degas, 1878, Musée d'Orsay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에드가 드가 (Edgar Degas)의 유명한 대표작품이다.

드가는 주로 발레리나들을 많이 드렸는데 오늘 소개할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은 바로 발레극이다.

차이콥스키의 3대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 <호두까기 인형> 등 모두 발레극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매년 연말, 특히 크리스마스만 되면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에서는 늘 거의 빼놓지 않고 <호두까기인형>을 하는 편이다. 덕분에 내 기억으로 고등학교 대학입시를 마친 후 거의 30년 남짓 크리스마스가 되면 <호두까기 인형>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러 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와 호두까기 인형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Ballettprobe, Edgar Degas, 1873, Fogg Museum


에드가 드가가 살던 19세기 후반 파리는 지금은 '대가'라고 흔히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시기이다. 화가 중에서는 폴 고갱,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이 활동하던 시기였고 음악가로는 폴란드에서 온 쇼팽의 낭만주의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비제, 브람스, 드보르작, 리스트 등의 인기가 치솟던 시기였다. 전체적으로 '낭만주의'의 느낌이 파리라는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를 벨 에포크(프랑스어: Belle Époque [bɛlepɔk], 아름다운・좋은 시절)라고 일컫는데 주로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914년)까지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 데에 회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난 개인적으로 '벨 에포크' 시기를 너무 좋아한다.

그중 빠질 수 없는 음악가가 바로 차이콥스키인데 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인이 아닌 러시아 사람이다. 페탸(차이콥스키의 애칭)은 공무원인 아버지와 몸이 너무 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주 듣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들으며 차이콥스키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법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차이콥스키의 모습



10살이란 이른 나이에 부모님의 손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지 않았던 법률공부를 하게 된 차이콥스키는 재학 중 알게 된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 취향 등으로

상당히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졸업 후 19세 때 법무성의 서기가 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다름 아닌 '음악' 임을 깨닫고 2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던 공부를 하게 돼서일까?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 <교향곡 1번>을 이 시기에 연달아 작곡하게 되고 자신이 어린 시절 내내 괴로워했던 동성애 성향도 점차 나아 되어 이성과의

연애, 이별도 하게 된다.  <백조의 호수>, <피아노 교향곡 1번> 등을 작곡하게 되었고 

러시아 최고의 음악원인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수를 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The Rehearsal Onstage,  Edgar Degas, 1874, Metropolitan Museum of Art



하지만 그의 성적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당시 러시아에서 이런 성향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스스로의 성적 취향을 묵인하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무리하게 강행하게 되고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차이콥스키는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며 창작활동과 음악원 교습에 지장을 받게 된다.  


결국 결혼에 실패하게 되고 힘들어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평생의 귀인처럼 만나게 된 부인이 

바로 '폰 메크 부인'이다. 그녀는 14년간 1200통에 달하는 편지를 차이콥스키와 주고받으며 사랑이 아닌 '우정'을 나누며 차이콥스키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된다. 


그녀는 철도사업으로 부를 거머쥔 사별한 남편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로서 차이콥스키에게 

상당한 금액의 지원금을 후원해주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바이올린 협주곡>, <1812년 서곡> 등의 '걸작' 들이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뒷받침된 영향이 아닐까 싶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1


하지만 이런 '호사'가 평생 가지는 않는 법!!


1890년 폰 메크 부인은 갑작스레 파산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면서 갑작스레 '결별'을 통보하는 마지막 편지를 보내게 되고 그녀의 일방적인 '결별통보'에 큰 충격을 받은 차이콥스키는 훗날 죽기 직전 병상에서 격분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고 하니 차이콥스키의 당시 '충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부인의 후원이 끊겼다고 해도 이미 차이콥스키는 지금까지 발표한 곡들의 성공과 러시아 황제의 연금까지 받고 있었던 터라 경제적으로 힘들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내성적이고 예민하던 그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복잡한 시기에 만든 곡이 오늘 소개하는 <호두까기 인형>이다.

원래 이 곡은 원작이 동화였던 터라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이 발레와도 어울리지 않고 아이들의 동화일 뿐 아니라 스토리도 유치하다고 생각돼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1891년 1월에 착수하자 작곡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2


발레의 줄거리를 요약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곡의 여주인공인 '클라라'가  할아버지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한 뒤 잠들었을 때  생쥐 왕이 부하들을 이끌고 습격해 온다. 호두까기 인형이 병사 인형들을 지휘해 맞서지만 상황은 불리하기만 하다. 이때 클라라가 슬리퍼를 던져 생쥐 왕을 쓰러뜨리자 생쥐들은 모두 도망가 버린다. 

그 뒤 호두까기 인형이 갑자기 왕자로 변신해 생명을 구해준 후 그 보답으로 클라라를 과자 나라에 초대하게 되고 과자나라에  각 과자를 상징하는 요정들이 차례로 춤을 춘 뒤 모두가 한데 어울려 흥겹게 춤추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 중에서


총서곡을 포함 16개의 곡 (세분화하면 24곡)으로 구성된 작품인데 24곡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3가지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부분


첫 번째 소개할 곡은 호두까기 인형을 총 3개의 파트로 나눴을 때 2번째 파트 시작단계에 나오는 '행진곡 (Marche)'으로 G장조 4/4박자로 정확히 발레에서는 1막의 두 번째 곡이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싸고 행진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면서 아이들의 한껏 들뜬 분위기를 정말 잘 표현한 장면이라 너무 좋아하는 파트이다. 

흥겨운 아이들의 춤과 행진곡의 4/4박자가 너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고나 할까?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3


두 번째로 소개할 곡은 '사탕요정의 춤 (Danse de la Fée-Dragée)'으로 2막의 다섯 번째 곡 ‘파 드 되’(2 인무)의 세 번째 순서에 해당한다. 네 마디의 현악 피치카토를 타고 '첼레스타'가 신비로운 선율을 연주한다. 첼레스타는 1886년에 발명된 건반악기로 차이콥스키가 파리 여행 중에 발견하게 되는데 이 악기의 독특하고 영묘한 음색에 매료된 그는 지인에게 이 악기를 사놓으라고 부탁하면서 다른 음악가들에게  알려지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차이콥스키가 바로 이 '첼레스타'를 사용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게 사실이며 개인적으로도 <호두까기 인형>의 몽환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와 악기가 갖고 있는 느낌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4

마지막으로 소개할 부분은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으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예전 러시아에서 직접 이 공연을 봤을 때 익숙한 곡이지만 너무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러시아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정말 너무 멋진 곡이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5



세부적으로 장면을 살펴보자면 사탕 요정의 시녀 24명이 추는 군무 장면, 작은 서곡을 지닌 확장된 왈츠, 이어 진행된 하프의 카덴차 스타일의 곡을 지나 호른이 기품 있고 우아한 주제를 연주한다. 이후에도 클라리넷, 플루트 등이 가세해 성대하고 화려하게 클라이맥스를 구축한 다음 그대로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매년 공연하는 것인지 이제 좀 감이 잡힐 듯하다. 

발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는 점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만  동화적인 분위기로 누구나 줄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과 차이콥스키 특유의 귀에 착 달라붙는 선율미가 십분 발휘되었다는 점 등이 이 작품을 연말의 단골 레퍼토리로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는 거대한 러시아 대륙의 기상, 혹독한 추위와 겨울, 생동하는 봄과 녹음의 여름, 가을의 쓸쓸함과 우수에 젖은 분위기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차르'가 다스렸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제국'의 웅장한 기상과 화려함도 녹아 있는 듯하다.

지금은 그 '멋진 기상'이 변질되어 국제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나라가 되었지만 19세기 차이콥스키부터 시작되어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러시아 낭만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연말에 꼭 뭐에 홀린 듯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30년 동안 거의 매년 추위를 불사하고 찾아가서 보는 나처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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