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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May 14. 2019

우리 마음속의 SKY 캐슬

IF는 IF일 때 가장 행복하다


‘쓰앵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등 수많은 유행어와 패러디를 쏟아낸 드라마 SKY 캐슬.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공부는 물론,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학교생활,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을 관리하는 것도 모자라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벌인다. 그렇게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면 상상만큼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 



쓰앵님. 우리 예서 서울대 의대 갈 수 있는 거죠?

드라마 제목은 몰라도 ‘쓰앵님’, ‘어머니,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등 유행어는 모두가 안다. 그만큼 JTBC 드라마 ‘SKY 캐슬’은 2019년 초반 광풍을 일으켰다. 종영한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광고에 드라마 속 배우들이 줄지어 등장하고, 드라마 속 대사를 패러디한 콘텐츠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드라마는 20회 내내 서울대 의대 입학을 꿈꾸는 부모와 자녀의 치열함을 그려간다. 시작부터 서울대 의대에 아들을 합격시킨 엄마를 위한 축하 파티가 열린다. 엄마들은 서울대 의대 합격시킨 부모에게 합격 비결을 캐내느라 혈안이고, 아빠들은 3대째 의사 가문을 달성한 것을 치켜세우느라 여념이 없다. 

2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서울대 의대 합격 프로젝트’. 공부는 물론, 학습 반경을 넓혀줄 수 있는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을 쉼 없이 돌린다. 엄마의 노력은 더하다. 딸의 내신성적, 수상실적은 물론 집안 인테리어까지 신경 쓴다(실제로 드라마에 등장한 주인공의 책상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리고는 마침내 거액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 그녀는 성적, 교외 활동, 친구, 심지어 라이벌까지 관리하며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벌인다.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울대 의대 합격’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다한다. 서울대 의대만 입학하면 모든 것이 완성될 것같이 말이다.  


'파국이' 아저씨는 심지어 피라미드 모형을 가져다놓고         꼭대기 층에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마음속에도 ‘서울대 의대’ 하나쯤은 있잖아요

SKY 캐슬 주인공들이 ‘서울대 의대’를 품는 것처럼 사실 우리도 이것만 이루어지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 하나쯤은 마음속에 있지 않나. 집 사고, 자동차 사면 당첨금 10억짜리 로또 가지고는 되지도 않겠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당첨 번호 발표에 어떻게 당첨 번호를 한 줄에 하나씩 나누어 적었냐며 로또 종이를 찢어 버리는 것이 우리네 일상. 하지만 또다시 ‘자동이요!’를 외치며 한 주를 운동장 같은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나를 꿈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서울대 의대’는 프랑스 남부 해변가로의 휴가이다. 고운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나를 상상만 해도 세상 시름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상상 속에 나는 주인공이 나이기라도 하지. SNS는 지인들이 자동차를 산 후 처음 시승이라며, 아들이 좋은 학교에 갔다며, 집을 샀다며 부럽기만 한 사진이 무자비하게 올라온다. 잘 지내다가도 SNS만 열면 내 삶이 갑자기 시들해 보인다. 오죽하면 SNS에 올라온 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카페인 우울증’이 유행할 정도였을까. 정말 이 세상은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서울대 의대에 갔으면 피 봤을 것이다

SKY 캐슬 주인공 예서가 결국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면 행복했을까. 상상은 실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유튜브에 올라온 실제 서울대 의대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9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고도 자정까지 공부해야 하고, 2주에 한번씩 시험을 봐야 한단다. 게다가 서울대 의대이면 학창시절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두 모였을 테니 성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모두들 ‘의사만 되면’이라면서 참겠지만 현실은 동네 병원 10곳 중 9곳이 폐업 중이다.

다른 고3 학생들이 꿈꾸는 대학교들은 어떨까. 과 잠바 입고 청춘을 즐기리라 상상하겠지만 실제 대학교 재학생들이 남긴 리뷰를 볼 수 있는 ‘애드캠퍼스(https://www.addcampus.com/)’를 보면 온통 ‘입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자퇴 생각 중’, ‘편하게는 못 산다.’ 등 다양한 표현의 ‘오지 마세요.’가 줄을 잇는다. 저 회사만 입사하면 인생 성공할 것 같은 대기업도 직장인들의 기업 리뷰 ‘잡플래닛(https://www.jobplanet.co.kr/)’에 워라밸은 개나 주라며 지쳐가는 인생들이 수두룩하다. 로또에 당첨되면 다를 것 같지. 실제 복권 당첨자 중 3분의 1은 파산했다. 돈은 커녕 집도, 자동차도 안 남았다는 소리이다. 

상상 속 프랑스 해변도 마찬가지. 일단 프랑스까지 가는 것부터 문제이다. 좁디좁은 비행기 좌석에 내 몸을 꾸겨 넣고 다리를 주물러가며 12시간 동안 참고 견뎌야 겨우 도착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더 피곤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벌써 둘째 날이다. 인제야 사무실에서 그리던 장면이 시작한다. 드디어 해변가에 간다! 등까지 손이 닿지 않는 바람에 태닝 오일을 다 바르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모래사장에 눕는다. 하늘은 파랗고, 파도 소리는 청량하다. 

30분 정도 누워 있었나. 슬슬 지겹다. 



IF ‘서울대 의대’와 Real ‘서울대 의대’의 삶은 왜 이렇게 다른가

생각보다 인간은 자신이 미래에 어떤 감정을 가질지 예측하는 ‘행복 예측 Happiness forecasting’과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 사이의 갭이 크다. 수많은 실험으로 심리학자가 밝혀낸 사실이다(심리학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론화하는 학문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것 같아?’, ‘이게 거짓말이게? 아니게? 라고 물어봐도 모른다.).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와 미국 중서부 사람들이 예측한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한 실험이다. 캘리포니아와 중서부의 대학생들에게 어디에 사는 집단이 더 행복할 것 같은지 묻자 두 집단 모두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더 행복하리라 예측했다. 365일 봄 날씨를 유지하는 기후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두 집단의 행복도를 비교하자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험자 모두가 ‘날씨’에만 집중해 교통이나 물가 등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들을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초점 착각 Focusing illusion’이라 한다. 초점 착각은 실험 상황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페라리가 내게 줄 황홀감에 취해 빚에 허덕이며 짜증 낼 미래의 나는 상관치도 않고 무리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배부를 때보다 배고플 때 장을 보면 장바구니에 더 이것 저것 담게 된다. 다 감정 예측의 오류 때문이며, 초점 착각 때문이다. 예서가 서울대 의대만 가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것도, 로또만 당첨되면 세계 제패할 것 같은 것도, 프랑스 남부 해변이 천국 같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그 초점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프레임 밖에서 도사리고 있는 20시간 공부뿐인 삶이나, 돈 좀 빌려달라는 수많은 지인 전화, 비행기에서 12시간 동안 부어오르는 다리를 주무르는 순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SNS 피드에 올라오는 지인들이 부러운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밖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진에 담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좋은 경험을 ‘느낄’ 장소보다는 사진이 잘 찍히는 곳을 찾아간다. 사진은 오죽 잘 찍나. 필터에, 트리밍에, 후보정에 이상하게 찍힌 사진도 천국을 만들어놓는다. 그러니 당연히 부러울 수밖에. 

진짜는 인스타그램 밖에 있다


‘핑크빛’ 미래를 즐기게 된들 그 ‘핑크빛’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 더 큰 함정이다. 처음에는 이 세상 더 바랄 것 없을 것같이 행복했겠지만 딱 한 달만 지나면 그렇게나 즐거웠던 일이 그저 그런 일상으로 가라앉는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처음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떨어지고 결국 복권 당첨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이 ‘적응 adaptation’이라는 강력한 현상이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감정은 어떠한 자극에도 금방 적응해 지속해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생각해보면 계속 반응하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로또 당첨은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IF ‘서울대 의대’는 Real ‘서울대 의대’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

아무튼 결론은 바라는 것, 바라는 것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리 부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원하던,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칼럼니스트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 칼럼을 쓰느라 삼일 밤을 새운 대다 떡 진 머리를 하고 마감에 압박을 모른 척하며 씨름하고 있다(칼럼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커피숍에서 호로록 커피를 마시며 2시간 만에 글을 완성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커피잔과 꽃병의 각도를 잘 맞추어 인스타그램에 있는 척하고 있다. 나의 지인들은 내가 삼일 밤을 새운 것이나, 머리를 감지 못하고 글을 쓰는 중이라는 것은 모른 채 인스타그램 프레임 속 사진만 보며 부러워하는 리플을 달았다. 나는 보지만 남들은 미처 보지 못한다. 모두가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그 뒤에 숨어있는 오래 참음과 자질구레 한 것들은 모른다. 

내가 막상 꿈을 이룬 그때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꿈속의 ‘서울대 의대’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1.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 에드 디너, 로버트 비스워스 디너. 21세기 북스

2.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 북스

3. Schkade, D. A., & Kahneman, D. (1998). Does living in California make people happy? A focusing illusion in judgments of life satisfaction. Psychological Science, 9(5), 340-346. 


우체국 사보 '우체국과 사람들 4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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