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엄청난 속도로 인기가 급부상 중인 유튜브 채널이 있다. 그 채널의 이름은 바로 '사우스 코리안 파크 South Korean Park'. 영상을 올리는 족족 1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필자는 이 채널을 쇼츠를 통해 처음 접했다. 채널명처럼 실제 사우스파크를 연상시키는 그림체와 유머코드 때문에 관심이 생겨 채널을 발견한 그날 모든 영상을 다 보고 말았다. 사우스파크의 모든 시즌을 거의 다 챙겨볼 정도로 사우스파크에 광팬인 것만으로 이 채널을 챙겨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 채널이 그저 사우스파크의 카피캣 정도였다면 이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우스 코리안 파크는 '한국'이라는 국가를 대상으로 하여 사우스파크식 사회 풍자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들과 차별점을 두었다.
'여경 논란', '페미니즘 논란', '사이비 논란' 등을 우리는 평소 렉카 유튜버들이 그저 지금의 상황을 읊어주는 것을 통해서 접해왔다. 그러나 사우스 코리안 파크는 이 다양한 논란들을 애니메이션이란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며 풍자했다는 점에서 찬사 받아 마땅하다. 이전에도 유튜버 '장삐쭈'와 같은 유튜버들이 사회 풍자를 하려는 시도를 보이긴 했으나 이 정도로 강력하게, 또 직접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는 것은 사우스 코리안 파크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러한 민감한 주제를 다루니만큼 그에 따른 논란 또한 들끓고 있다. 사우스파크를 향한 비판으로는 장애인을 비방하고 종교를 비방하는 것이 어떻게 허용되느냐는 식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의견은 이것은 단순 유머가 아닌 비하와 차별이라는 것인데, 필자는 이러한 의견에 쌍뻐큐를 날리고 싶다.
표현의 자유는 숭고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냐는 물음에 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상해를 유도하는 것은 제외다. 그것은 표현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폭력이다) 누군가와 1대 1로 대화할 때 이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건 오히려 올바른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1대10일 경우에 혹은 1대 100일 경우에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중요한 말도 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면 마틴 루커 킹도 없었을 것이고,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우스 코리안 파크는 재밌다. 이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웃긴 건 그냥 웃긴 거다. 우리 곁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을 '해학'을 통해 초월하는 능력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자유로운 사회의 특징은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시청자들의 '불편한 감정' 때문에 유재석이 곤장을 맞아야만 했던 제2의 무한도전 사태를 만들어선 안된다.
대중들의 경계선에 서서 줄타기를 하는 사우스 코리안 파크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밀어내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그들이 넓혀 놓은 경계 안에서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