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없었다. 찐따와 만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에 자연히 씹덕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원나블을 제외하고 '씹덕'이라고 부를 만한 만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한창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가 애니맥스에서 방영 중이었고, 나의 어린 마음은 이 안대를 쓴 귀여운 소녀에게 단숨에 빠져들었다.
그 후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도쿄구울> 등 그 시기에 나온 모든 만화를 섭렵하며 씹덕력을 늘려갔다. 당시에 왜 그토록 만화에 열광했는가 생각해보면, 역시나 친구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결핍은 늘어나고, 만화는 효과적으로 이 결핍을 해소해주었으니 말이다.
친구가 좀 생겼을 때에도 내 만화 사랑은 줄지 않았다. 꼴에 근본을 챙긴다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반게리온> 등의 틀딱 만화를 부터 <잘 자 푼푼>,<nhk에 어서오세요!> 등 힙스터 만화들까지 챙겨보았다. 볼게 없으면 디시 인사이드의 카연갤에 들어가 아마추어 작가들의 만화를 봤다. 카광, 이자혜, 고랭순대, ㄱㅇㄷ 등의 만화를 챙겨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들은 대개 욕망에 솔직하며 모순을 부정하지 않으며 사람을 사로잡는 감정들을 잔인할 정도로 파헤친다. 그런것들과 함께 성장하며 나는 '나'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몇몇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한다. 멸시하기까지 하는 사람도 몇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씹덕스러움이 좋다.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사람들 눈도 잘 못 보는 찐따는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만화를 본다. 그것들의 마이너함, 찌질한 감정, 구세대 오타쿠적 자의식이 좋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 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건 이런 것이다. 마이너한 것만이 전해줄 수 있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주고 싶다.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나의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법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