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증상과 징후
몇 달 전, 어금니를 뽑았다. 뿌리가 상해 흔들리는 이였다.
치과에서는 “많이 아팠을 텐데 왜 이제 오셨어요.”라 물었다. 실은, 아프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아팠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피곤할 때 묵직하고 가끔 쑤시고, 때론 음식을 반대쪽으로만 씹으려 했지만, 결론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만약, 어금니 뿌리에 더 확실한 통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통증을 확실히 알아차리고, 어금니를 살펴보고, 난감해하며,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한 주간의 일정을 조율하고 치과로 달려가 주치의와 상의했겠지.
나를 힘들게 하고 일상을 어렵게 만드는 통증이 있을 때, 우린 이를 알아차리고 살펴봐주고 대처하게 된다. 통증은 일종의 신호이다. 몸과 마음의 통증은 우리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살펴보라는 신호이다.
몸과 마음의 증상(symptom)과 징후(sign)는 이런 역할을 한다. 나를 괴롭히는 통증이 모여 선명히 나타나면 진단의 바탕이 되는 징후(sign)가 되고 주변이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증상과 징후의 구분은 마음의 영역에서는 덜 선명하게 구분되기는 하지만, 증상과 통증의 알아차림이 자기 돌봄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은 몸과 마음의 영역에서 동일하다.
나의 어금니에게로 다시 돌아오면.
이를 뺀 자리는 허전했고, 아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동안 음식 먹기도 조심스러웠다. 아픈 자리가 아물고, 그 빈자리에 임플란트 나사못 하나를 공사현장 기둥 박듯 넣었다. 빈자리 잇몸을 꽉 채우는 나사못이 내 것 같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묵직한 아픔을 견디고, 부기가 가라앉길 기다리고, 상처가 아물게 돌봐야 한다. 수술 후 꿰맨 실밥이 입속 여린 볼살을 찌르기도 했지만 그 또한 ‘과정’이다. 그것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다.
마음의 통증을 다루는 과정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통증을 알아차리고 살펴보는 과정은 어렵고 고단하다고 생각되어 피하고 싶을 수 있지만, 잠시 멈추고 자리 잡고 앉아 내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상담의 시작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