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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땅벌 대잔치

마음의 작용 4: 습관

by SOY

작년 초여름.

거실앞 작은 베란다는 비에도 눈에도 해와 달에도 그대로 노출된 공간이다. 주변환경은 산, 들, 논, 밭이 많아 우리 집 베란다는 다양한 산새, 곤충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리하여 베란다에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그중 바로 땅벌이다. 꿀벌보다는 조금 더 크고, 줄무늬가 더 선명한, 엉덩이가 뾰족한 생김새다.

녹슨 양철 물조리개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둥근 입구와 어두컴컴한 내부가 아마도 땅속 같은 느낌이었을 거다. 어느 날, 땅벌 몇 마리가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난감해졌다. 빨리 가서 뜯어말려야 한다. 다른 곳에 지으라고 해야 한다. 너희들은 우리 집에 적당하지 않다고 해야 한다.

땅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무젓가락을 들고 막 생기기 시작한 회색빛 벌집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단단히도 붙어있었다. 2-3cm가량의 벌집을 해체하려고 낑낑거린 후, 집에서 가능한 한 멀리 버렸다. 그리곤 땅벌과 벌집의 존재를 잊었다.


여름 폭우가 며칠 동안 쏟아지고 난 후, 젖은 머리 헝클어진 것 같은 화분들을 돌보러 베란다로 나왔다. 그러다 물조리개에 그득 담긴 빗물 바닥에 무언가를 발견한다. 회색 벌집이다. 없어진 집을 다시 재건하느라 같은 자리에 열심히 집을 지었던 모양이다. 부지런도 해라. 똑같은 자리에 또 그렇게... 그러다 빗물을 막을 길 없어 집도 애벌레도 잠겨버린 모양이다. 물을 비워내고 물에 잠긴 벌집을 내다 버린다.


이후에도 땅벌과 나는 집짓기, 해체, 재건, 해충약 뿌리기, 해체, 다시 집짓기, 해체, 재건, 빗물에 잠김, 재건... 을 반복했다. 집이 망가져도 굴하지 말고, 슬퍼말고, 포기 말고 '네 할 일을 하라'라고 설계된 탓일까. 나무둥치 아래, 우거진 수풀 땅속에서라면 폭우나 멧돼지의 앞발에 망가지더라도 생명력 넘치게 제 할 일을 해야겠지. 그게 적당한 일이겠지. 그런데 여긴 고작 작은 베란다, 녹슨 양철 물조리개 속이란 말이다.


무엇이 땅벌을 그리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 안에는 어떤 땅벌이 살고 있을까.

적당치 않음을 몰라서, 혹은 적당치 않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됨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습관이 우리 몸과 마음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상담(심리치료)은 내 마음의 땅벌을 함께 찾고, 그 땅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발견하고,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확인하며,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내보는 과정이다. 녹슨 양철 물조리개에 집 짓는 것 말고,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 그것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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