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te

쓸 수 없는 돈

by 노푸름


거리엔 민들레 대신

눈과 얼음이

얄궂게 피었을 때


어렸을적 할머니와 나는

엄마를 보러 상경했다


알 수 없는 서울의 길을

할머니의 손에 의지한 채

까만 눈길을 걸었다


이윽고 인적 없는

고시원에 도착했다


먼 곳까지 온 우리더러

엄마는 춥다며

역까지 꼭 택시타고 가라며

돈 몇 천원 쥐어 주었다


할머니는 단 한번도

택시를 타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억척스럽게 걸어갔다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서릿발이 날리는데

왜 택시를 타지 않을까


어린 손녀는

다리도 아프고 춥다며

투정부렸다


엄마가 분명히

택시타고 가라고 돈도 줬는데


추운 날도

할머니도

원망스럽기만 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남의 돈을 벌기 시작할 때

할머니가

그때 왜 택시를 타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도 없이 세 남매 키우는

가엾은 딸년이 힘들게 벌어온 돈


돈 때문에 명절에도 못내려오는

불쌍한 딸년이 벌어온 돈


생떼같은 자식들 키워보겠다고

고시원에서 아둥바둥 사는 딸년이 준 돈


다른 형제들에 치여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안쓰러운 딸년이 번 돈


그 아까분 돈

택시비로

쓸 수 없어서


그 슬픔 서린 돈을

할머니는 쓸 수 없어서


정말 추운 날


할머니는

택시를 타지 않으셨다


내 딸이 겪을 고생보다

춥지 않으니까


추운 겨울

택시를 지나쳐 보내며

걸어오는 날 알게 되었다


당신보다

딸을 위하는 마음을


숭고한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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