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폄하하는 면접

by 노푸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주 뒤, 애석한 마음을 추릴 새도 없이 직장을 알아봤다. 홀홀단신이 된 몸을 포기하지않고 건사하는 것이 남겨진 나의 몫이라 생각했다.

꿈보다 당장의 월세와 먹고 사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퇴사한지 일년 반만에 보는 첫 면접. 안 그런척 했지만 참 많이 떨렸다. 그래도 이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겠구나. 한편으로 설렜다.


면접을 보러 들어간 회의실 칠판에는 두 가지 질문이 써 있었다.

"기자란 무엇인가"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뭐지, 내가 써야 할 테스트 기사 주제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안 있다 면접관이 들어왔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은 푸근하지만 어딘가 냉철한 느낌이 들었다.


인사를 나누고 이력서를 쓱 보고 내려가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전 직장에서 했던 업무는 무엇인지

왜 퇴사를 했는지

회사를 안 다니는 공백기간에 무슨 일을 했는지

그럭 저럭 얘기를 하다, 쉬는 동안 할머니를 돌보며 알바를 했다는 얘기에 면접관은 못믿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할머니를 왜 자신이 돌봤죠? 다른 자식도 있을텐데"

조금 불쾌했다.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투의 질문.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삼촌들이 계시지만 자식들 건사하기도 힘든 형편이라서요. 무엇보다 삼촌들보다 제가 할머니와 산 세월이 더 오래라 제가 할머니를 케어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제가 퇴사도 했었고요."


"대단하시네. 요새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근데 자기 인생도 생각해야지. 안 그래요?"


자신의 생각을 내 인생에 우겨 넣으려는 듯한 상식에 불쾌했다. 그래도 참아야지.

"그렇죠."


"할머니가 당신 인생을 살아주진 않잖아. 할머니 케어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자기 인생도 케어해야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폄하하는 듯한 기분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마지막까지 제가 케어해드리고 싶었어서 그랬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도 저는 똑같이 선택할 겁니다. 제가 한 선택에 후회하진 않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았던 때. 눈물을 참으며 할머니를 운운하는 사람 앞에서 애사심이며 취직 생각은 무슨.


"예. 저는 푸름 씨 선택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렇죠. 자기 인생도 책임져야 한다 이말이죠."

"예."

당신이 뭘 알아. 라는 말은 삼켰다.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기가 오신 할머니를 돌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이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판단할 수 없을텐데. 저 사람은 누군가를 돌봐본 적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겠지.


"그 전 회사에서 연봉이 2000?"

"네."

나는 연봉이 적지만 그래도 나름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일했다.

"푸름 씨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더 해야겠어."

"네?"

"돈이 있고 나서 부모가 있고, 그런 거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건데."

"저는 많은 돈보다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봐봐. 푸름씨가 돈이 없으면 옷도 음식도 못 먹는 거잖아. 돈을 벌려고 노력을 더 해야해."


그곳이 돈을 많이 주냐. 많다 해봤자 2000에 몇 백 더 주며 고생과 정신적 고통을 선사할 곳이겠지.


나는 나의 인생을 깎아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가 적은 임금을 받았다는 걸 창피한 줄 알아야한다며 꾸중했다. 듣고 있기 거북했다.


칠판에 적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글을 써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는 내게 업신 여기는 말투로 써볼래요? 라고 했다. 당장 퉤하고 침뱉고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제가 부족하지만 준비한 게 3이라면 그 3이라도 다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이에요. 써 볼게요."

"준비한 3이 뭔데요? 대체."

웃으며 무마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혔다. 그래, 나는 준비된 게 없다.


그때 글을 쓰며 느꼈다. 내 글이 참 별로라는 걸. 내가 가진 게 없다는 걸.


그곳에 나와 기가 빨린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입맛도 없고, 그 곳에서 당한 멸시와 비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다른 면접을 보러가기 두려웠다.

"또 그러겠지", "내게 또 멸시를 줄 거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겠지."

나는 무서웠다.


나약해질 때면 비겁하지만 떠나간 할머니와 엄마를 찾는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며 산삼 한 뿌리 투척해 줄 내 사람. 투정부리며 많이 보고싶다며 훌쩍이면 조금 나아진다.


친구들이게라도 말하자.

친구들은 뭐 그런 회사가 있냐며, 그런 회사는 안 가는 게 다행이라며 나보다 더 화를 내줬다. 그제서야 나는 내 삶의 리듬을 찾을 수 있었다. 참 단순하다. 또 단순해서 다행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도 기꺼이 순응하는 삶, 돈도 중요하지만 내 일에 보람을 느끼는 자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삶. 그런 불온전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굳건한 믿음과 리듬을 찾았다.


면접을 다니면 이런 일이 많다. 나의 삶을 부정당하는 느낌.


나는 절망적으로 외치고 싶다. 어떤 이의 조악한 기준으로 누군가의 선열한 인생을 보잘 것 없다 말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삐삐, 매너는 여기까지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라는 가사처럼,

선은 넘지 말길

면접관은 면접자들에게 어줍짢은 조언할 자격이 주어진 게 아니란 걸 알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또 면접을 본다.

분명 내게 맞는 회사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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