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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4. 2019

황소 모형 앞에서

고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 앞엔 작은 놀이터 하나가 있었다. 입주했을 땐 놀이터가 모래바닥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우레탄 재질의 탄성이 있는 바닥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실물 크기의 황소와 돼지, 호랑이 모형이었다. 정말 크고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리얼했다. 저녁에는 그 모형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이 어떤 심정인지 알겠더라.


할머니와 장을 보고 올 때면, 집 앞 벤치에 앉아 쉴 때가 있었다. 할머니는 놀이터에 황소 모형을 보며 옛날에 목장을 운영했던 때를 떠올렸다.     

“젖소였지.”

“할머니가 소를 어떻게 키웠어? 힘들었었겠다.”

“힘들었지. 근데 참 예뻤어. 소들이 얼마나 순한데. 말도 잘 듣고. 내가 가면 귀신같이 알고 밥 달라고 울었어. 또 내가 아니면 밥을 줘도 안 먹으려고 하고 울기만 했지.”

“진짜? 정말 신기하다. 그럼 안산 올 때, 그 소들은 그럼 다 팔았어?”

“다 팔았지. 니 할애비가 다 날려버리고, 첫째 놈이 다 날려버렸지.”

“그게 다 얼마야. 엄청 비쌌겠다.”

“그 소를 팔려고 하면, 안 가겠다고 얼마나 울던지. 팔려 가는 걸, 지도 아는 거여.”

“너무 불쌍해.”

“뭘 불쌍혀…얼른 들어가자.”     


안쓰러워하는 내 마음을 할머니는 늘 모른 척 외면한다. 거추장스러워 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할머니도 젖소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외면하는 이유는 지난 감정에 굳이 마음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일에 마음 쓸 겨를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할머니에게 마음 써야할 중요한 무언가가 생긴 거겠지.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일에 마음을 쓸 수 없어진다. 나이가 들면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쓸까. 중요하고 소중한 것에 나눠쓴다.


결국 에너지를 쓴다는 건 마음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부족한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그 에너지는 늘 사랑을 향한다. 때론 알지 못했던 에너지가 샘솟을 때가 있다. 그런 현상은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서둘러 들어가는 할머니를 붙잡지 않는다. 왜 과거를 생각하려 하지 않냐며 캐묻지도 않는다. 할머니가 지금 에너지를 쏟고 싶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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